|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행정부 수반(이명박 전 대통령)·사법부 수장(양승태 전 대법원장) 외에 구속 수감됐다 보석(保釋)으로 구치소를 나온 사례가 왕왕 있다. 대개가 대기업 총수 등 사회 유력 인사들이다.
최근 2차 파기 환송심에서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이호진(57) 전 태광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1년 4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전 회장은 간암 등 질환을 이유로 63일 만에 구속집행이 정지됐다. 이듬해 6월 병 보석 하가를 받아 7년 넘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이 기간 동안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포착돼 `황제 보석` 논란이 불거졌고 지난해 12월 재판부의 보석 취소 결정으로 다시 구치소에 수감됐다. 시민사회단체에선 “재벌에게만 사법적 특혜를 허용하고 국민들에게 `유전보석 무전구속`이라는 박탈감을 심어준 사법부는 이 전 회장을 반드시 엄벌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중근(78) 부영그룹 회장 역시 병 보석이 인용돼 풀려난 경우다. 이 회장은 43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와 임대주택을 고가로 분양 전환해 폭리를 취한 혐의로 지난해 2월 기소돼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이 회장 측은 “(고령으로)심각한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등 수감 생활 중 건강 악화를 이유로 20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보석을 청구, 2개월 뒤 석방됐다. 구속된 지 161일 만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증거, 증인 조사가 대부분 끝나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이 회장 측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법정구속은 되지 않았다.
비자금 조성 및 회삿돈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몽구(81)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병 보석으로 풀려난 적이 있고,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던 최태원(59) SK회장도 보석을 두 차례 병 보석을 신청한 끝에 나왔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70억 뇌물을 준 혐의를 받는 신동빈(64)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보석을 신청했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경우다.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던 신 회장은 지난해 6월 자신의 해임 안건이 상정된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 참석을 이유로 보석을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고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구속 234일 만에 석방됐다.
재벌 총수나 정치인 등의 병 보석은 일반 제소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재벌 총수나 정치인 등의 이유없는 보석을 막기 위한 이른바 `이호진 방지법`을 지난해 11월 국회에 발의하기도 했다. 보석을 청구할 때 법무부 장관이 정하는 병원에서 발급한 진료기록을 반드시 법원에 제출하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는 내용이다.
한편 이 전 대통령 핵심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전적으로 의사 소견에 맡겨 보석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함께 출연한 정청래 전 의원은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들이 감옥만 가면 아프다고 하지만 보석으로 나오면 또 멀쩡한 전례가 있어 국민들이 의심을 하는 것 같다”면서 “종합건강검진을 한 번 해볼 필요는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