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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현재 우리 경제는 큰 위기 상황이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신사업 투자를 많이 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 산업 정책의 부활과 함께 복지제도를 획기적으로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으로 꼽히는 장하준(55)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한국경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했다. 장 교수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나쁜 사마리아인들 불온도서 10년 그 후’ 간담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타협하는 세상인데 재벌이나 기업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타협을 이끌어내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라며 “필요한 곳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제·사회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 교수가 2007년 번역·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위험성을 소개한 경제서다. 하지만 반정부, 반자본주의 등을 이유로 국방부에서 2008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부대 내 반입을 금지한 바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책은 70만부 이상 판매됐고, 160주 연속 경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출간 11년 만에 겉표지와 서문 등을 새롭게 바꿔 개정판으로 선보인다.
장 교수는 오늘날에도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봤다.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로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의 경제성장율은 반토막이 났다. 비정규직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공공복지 지출은 GDP 대비 10% 수준에 불과하다. 자살률은 1위로 올라섰지만 출산율은 최저다. 상상도 하기 힘든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란 말을 쓰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추구해온 신자유주의 노선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현재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최저임금제’와 ‘52시간 근무제’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25%로 전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들이 편의점과 치킨집 등 생산성이 낮은 장사를 하다보면 부담을 떠안게된다. 영세 자영업자가 많은 상황에서 1시간에 8000원을 왜 안주냐고 하면 불만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다.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어나는 문제들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과 어떻게 연결돼 있나를 먼저 살펴본 후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장 교수가 해법으로 내놓는 것은 ‘산업 정책의 부활’과 ‘복지 제도의 확대’다.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머리를 맞대고 우리 경제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산업은 무엇인지, 어떤 정부 정책과 기업 전략이 필요한지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제도가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과거 정부가 승자를 선택하는 ‘위너 피킹’ 등의 정책이 없었다면 삼성은 반도체 산업을 이끌지 못했을 것이고, 현대도 그냥 건설사로 남았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복지 제도를 통해 최저 생활을 보장해주고 실업 보험, 재교육 등을 확대해서 노동자들이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모두가 지속적으로 잘 살고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인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