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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제 앞둔 고등학교는 지금…엇박자·혼란·걱정

신하영 기자I 2022.02.16 19:00:00

고교학점제 도입한다면서 대입은 수능 강화
"선택형 교육과정, 표준화 잣대로 평가 불가"
학부모·교사 "고교교육과정·입시 상호 모순"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해 7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의견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오는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둔 교육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2025년 일반고에 전면 도입될 예정이지만 이미 10곳 중 6곳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지난해까지 전체 2367개 고교 중 1457개교(61%)가 연구·선도 학교로 지정됐고 올해는 일반고 기준 80% 이상이 지정될 계획이다. 이데일리는 교사·학생·학부모 등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신하영·김의진 기자] 지난 15일 점심시간이 막 지난 경기도 소재의 한 고등학교. 방학 중이라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교사들은 대부분 출근 중이다. 신학기 수업 준비나 평가계획 수립을 위해서다. 이 학교는 지난해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로 지정, 2025년 전면 시행될 학점제를 미리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대입제도와의 엇박자로 학점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교사들의 평가다. 이 학교 A영어교사는 “학생들 사이에선 점수 따기 어려운 과목이나 대입 수능에 반영되지 않는 과목에 대한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오는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둔 교육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정시 수능전형 선발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당국의 입시정책과 엇박자가 나고 있어서다. 학점제를 시범 도입한 고교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학생들은 입시에 도움이 될 선택과목으로 쏠릴 수밖에 없으니, 고교 교사들은 학점제 정착에 회의적 반응이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 진학부장은 “정시 수능전형을 확대하는 기조 속에서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하겠다는 정책은 상호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치러지는 2023학년도 대입에서 서울소재 16개 대학은 정시 수능전형 선발 비중을 40%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앞서 교육부가 2018년 발표한 2022학년도 대입개편에선 대학에 ‘수능전형 선발비중 30% 이상’을 권고했지만, 이들 대학에만 10%포인트 더 높이도록 요구했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불공정 논란이 심화되자 학종·논술 비중이 큰 주요 대학을 대상으로 정시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시 수능전형과 교육부가 2025년 전면 시행을 예고한 고교학점제 간 간극이 더욱 벌어지고 있다. 수능의 영향력이 오히려 더 커지는 상황에서 일선 학교에선 수능과목 중심의 교육과정 편성이 불가피하다.

경기도 소재 한 고교 교사는 “예컨대 사회과목 중 비교적 어려워 대입에서 불리할 것으로 보이는 ‘경제’는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진로·적성에 따라 선택과목을 이수토록 하겠다는 고교학점제 취지와 어긋난다”고 말했다.

학점제 시행을 위한 공간 부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도 소재 또 다른 학점제 선도 학교인 A고교의 경우 교실 수가 총 36개, 학년 당 12개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선택과목에 따라 해당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로 이동, 수업을 받는데 교실 수를 생각하면 선택과목 개설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 이 학교 관계자는 “교실이 부족해 선택과목을 줄이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간 선택형 교육과정에 익숙지 않았던 학생들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광주시 소재 B고교에 재학 중인 강모(18)군은 “주변에서 대학은 이공계로 진학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듣고 2학년 1학기에 과학과목을 선택했지만 중간에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을 겪었다”며 “학점제는 학생들에게 진로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향후 대입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교육학점제 시행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교육부는 오는 2024년 2월 ‘학점제용 대입’으로 불리는 2028학년도 대입개편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대상이다. 경기도의 예비 중1 학부모 김모(49)씨는 “수능을 자격시험화하거나 서술형으로 바꾼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향후 입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일반고에서 고교학점제가 정착되기 위해선 대입제도와의 연계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원도 원주시 소재 고교 수학교사는 “우리나라에선 고교수업이 대입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교육당국이 인정해야 한다”며 “고교수업을 개혁하겠다며 교육과정만 먼저 바꾸려 하니까 탈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욱 교총 조직본부장은 “고교학점제는 대입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데 대입 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안착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2월 17일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에 따르면 2025학년도부터 모든 고등학교가 대학처럼 개인 시간표를 짜 학점을 따는 학점제로 바뀐다. 3년간 총 192학점을 채워야 졸업할 수 있으며, 학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졸업이 유예될 수 있다.(그래픽=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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