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원자재 가격, 지난 1년간 50% 폭등…27년래 최대폭

방성훈 기자I 2022.02.10 16:41:31

1월말 기준 원자재 추종 CRB지수 전년동월대비 46%↑
커피·알루미늄 등 주요 9개 상품, 1년간 50% 이상 폭등
수요 급증하는데 공급은 코로나·우크라 사태 등 제약
수입의존 높은 국가 직격탄…세계 경제회복 둔화 우려
에너지·원자재 대란…세계 곳곳서 정정 불안까지 야기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원유와 각종 금속 원자재, 곡물 등 국제상품 가격이 지난 1년 50% 가까이 급등, 지난 1995년 이후 27년래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급 불균형이 심화한 탓이다. 공급망은 팬데믹(대유행) 초반 악화한 이후 지난 1년 간 좀처럼 개선세를 보이지 않았던 반면, 백신 보급에 따른 경기 회복으로 수요는 급격히 늘었다.

아울러 지난 해 하반기부터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 고조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쳐 국제유가를 비롯한 각종 상품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겐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터키 국민들이 9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서 전기료 영수증을 들어 보이며 에너지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커피·알루미늄 등 주요 9개 상품, 1년간 50% 이상 폭등

10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원자재 등 국제상품의 종합적인 가치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레피니티브 CRB지수는 1월 말 기준 전년 동월대비 46% 상승했다. 이는 1995년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주요 22개 품목 가운데 원유를 비롯한 9개 품목 가격이 50% 이상 급등했다. 커피가 91%로 가장 많이 올랐고, 면화(58%), 알루미늄(53%)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에너지의 경우 원유는 탈탄소 투자 확대로 공급이 제약되며 급속도로 회복하고 있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치솟았다. 천연가스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국가 간 갈등이 유럽을 중심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다른 산업 부문이나 원자재 가격에 연쇄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생산시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는 알루미늄 제조 비용을 증가시켜 제련 기업들의 감산을 유발했다. 아울러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비료의 주성분인 암모니아의 제조 비용을 높여 곡물 생산 및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 회복세가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달 에너지 가격이 현재 수준을 지속한다는 전제 하에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5포인트 하향한 4.4%로 제시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 등 에너지 및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기업들의 물류·생산 비용 증대 등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걸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세계 143개 국가 중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50%를 넘는 국가는 47곳에 달한다.

미즈호 리서치 앤드 테크놀로지스는 지난 해 일본의 원자재 수입액이 전년대비 약 10조엔(약 103조 4500억원)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연료 가격 등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AFP)
◇에너지·원자재 대란…세계 곳곳서 정정 불안 야기

에너지를 비롯한 국제상품 가격 상승은 경제적 타격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정정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에너지의 70%를 수입하는 터키에선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이달 초부터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터키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대비 49% 폭등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터키 정부는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커녕 되레 낮추면서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수입 의존도가 50%인 쿠바에서도 지난 해 7월 경제난을 호소하는 대규모 전국 시위가 발발했다. 잦은 정전과 식량·의약품(백신) 부족을 견디다 못한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 나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30년 만에 최대 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는 올해 초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지난 해부터 단계적으로 축소해 오던 LPG 보조금 지원을 올해부터 중단하면서 주요 도시에서 LPG 가격이 2배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 최대 우라늄 생산국인 카자흐스탄의 시위는 우라늄 가격 상승을 촉발하기도 했다.

태국에서는 1월 돼지고기 가격이 3개월 만에 약 50% 폭등했다. 가축 사료에 쓰이는 대두 및 옥수수 가격 상승이 전가된 것이다. 돼지고기는 태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식육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자원 부국들은 수출을 옥죄며 공급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실례로 인도네시아는 올 들어 석탄 수출을 제한한 데 이어, 최근엔 식품 및 일용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 팜유 수출 제한을 추진하고 있다.

닛케이는 “에너지·원자재 등 국제상품 가격 상승에 따른 정정 불안이 앞으로 더욱 확산할 수 있다”면서 “자국 경제를 우선 지원하려는 ‘자원 민족주의’가 국제상품 가격에 상승 압력을 가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고 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