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감원 “배상금 안 주는 방법으로 계열사 부당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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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지난해 이뤄진 종합검사에서 삼성생명과 삼성SDS 간 ERP 구축 계약의 불합리한 점을 발견했다. 삼성생명은 ERP시스템 도입을 위해 지난 2015년 3월 삼성SDS와 약 1561억원 규모의 용역 계약을 맺었다. 당시 삼성생명이 삼성SDS와 체결한 계약서에 적힌 완성 기한은 2017년 4월 30일까지였으나, 구축 기한이 반년 가량 지연됐고, 결국 ERP는 그해 10월에 오픈 했다. ERP란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제조업 계열사가 먼저 쓰던 통합자산관리 시스템으로, 회계·상품관리, 고객관리 등 회사 내 여러 업무를 통합·연계하는 기능을 한다. 2017년부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에 순차 도입됐다.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금감원은 삼성생명에 계약에 따라 삼성SDS에 지연 배상금을 요청하지 않은 것을 문제로 보고 있다. 지연 배상금은 약 15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보험업법상 보험사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험회사의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에게 경제적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자산을 무상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 공정거래법상에도 사업자가 부당하게 계열회사 등에게 과다한 경제상 이익이 되도록 자금이나 자산 등을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는 부당 내부거래에 해당한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삼성생명이 구축 지연으로 발생한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는 방법으로 계열사 부당 지원을 한 것”이라며 “이는 공정위 통보사항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금융위 제재가 확정되면 관련 절차에 따라 (통보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당 내부거래는 공정거래법과 보험업법 제제 대상에 해당된다”며 “이건 각각 법적 효력이 다르기 때문에 이중처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삼성생명 “지연 미리 예상해 재계약, 법 위반 아냐”
삼성생명은 종합검사 관련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해당 건은 ‘부당 내부거래’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한 지연이 예상돼 미리 ‘변경합의서’를 작성하는 등 사전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특히 ERP 시스템 구축에는 삼성생명 직원들도 직접 참여하고 있어, 일방적으로 삼성SDS에게 기한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는 게 삼성생명 측의 주장이다.
실제 삼성SDS는 2017년 4월 28일 삼성생명과의 ERP시스템 구축 계약 기간 변경과 관련한 예고 공시를 띄웠다. 이후 6월 계약기간이 2017년 12월 31일로 연장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계약금액도 기존 1561억원에서 1921억원으로 변경돼 23%가량 늘어났다.
금융업계는 금감원이 삼성생명과 관련해 암 보험금 미지급을 비롯해 즉시연금 미지급 등 거듭된 불완전 판매 이슈가 나타나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제재심 기관경고 결정에 대해서도 행정소송 등의 대응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삼성생명을 더 강하게 몰아세우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2년 전 삼성생명 ERP시스템과 관련한 전산장애가 터져 당시 과태료 등의 제재를 부과했었다”면서 “작년 종합검사에서는 부당 내부거래로 인해 ERP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