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율·대상·방식 달라…한국 실정 맞춘 제도 설계 필요 과세 범위와 형평성도 설계 변수 “소비 감소 넘어 건강 개선 입증해야”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가당음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설탕세’는 세계적으로 이미 상당수 국가가 도입한 정책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4년 7월 기준 최소 116개국이 국가 차원에서 한 종류 이상의 가당음료에 소비세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같은 ‘설탕세’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과세 대상과 세율, 당 함량 기준, 대체감미료 포함 여부 등 제도 설계는 국가별로 차이를 보인다.
7일 한국조세정책학회와 한국납세자연합회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가당음료 설탕부담금 도입 관련 조세정책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한국의 소비 구조와 저당·제로 제품 확산 추세, 식품업계의 제품 개발 방식 등을 고려해 과세 범위와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체당을 포함할지 여부부터 음료 외 과자·초콜릿·빵 등 다른 고당 식품과의 형평성, 실제 가격 전가 정도, 소득계층별 부담, 기업의 제품 재설계 효과까지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탄산음료 (사진=연합뉴스).
해외에서도 국가별 여건에 따라 과세 대상이 제각각이다. WHO 자료를 보면 일부 국가는 탄산음료 중심으로 과세하는 반면 주스·에너지음료·가당 차와 커피 등으로 대상을 넓힌 경우도 있다. 당 함량에 따라 세율을 차등 적용하는가 하면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음료까지 과세 대상에 포함하는 국가도 있다.
영국은 대표적인 차등 과세를 줘 성공한 사례다. 2018년 도입한 ‘소프트드링크산업부담금(SDIL)’은 음료의 당 함량에 따라 부담금을 달리 부과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기업이 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제품의 당 함량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책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다. 남혜정 동국대 교수는 “영국의 설탕부담금은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제품 재배합을 유도한 사례”라며 “부담금 도입 효과를 평가할 때 소비량 변화와 함께 기업의 저당화 등 시장의 구조적 변화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멕시코와 태국 등에서도 가당음료에 대한 과세 이후 소비량 변화가 관찰됐다. 다만 소비 감소가 비만이나 만성질환 등 궁극적인 건강 개선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는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 감소만으로 정책 효과를 판단하기보다 실제 건강 지표와 소비자의 대체 선택까지 함께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덴마크는 과세의 부작용과 제도 설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덴마크는 가당음료에 대한 세금을 운영했지만 2013년 세율을 인하한 데 이어 2014년 폐지했다. 국경을 맞댄 독일과 스웨덴 등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국경 간 쇼핑 문제와 국내 기업의 부담, 행정비용 등이 폐지 이유다.
과세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지도 문제다. 음료에만 부담금을 부과할 경우 과자·초콜릿·빵·아이스크림 등 다른 고당 식품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반대로 과세 대상을 광범위한 식품으로 확대하면 행정비용과 업계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어떤 식품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지에 대한 일관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담금이 실제 소비자 가격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법률상 부담금 수준이 같더라도 기업이 일부를 흡수하거나 유통 단계에서 가격 인상 폭이 달라지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효과와 소득계층별 부담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제도 도입 여부뿐 아니라 실제 가격 전가와 소비 변화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에서 한국형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고 꼬집는다. 노정란 명지대 교수는 “건강증진이라는 정책 목표 자체는 중요하지만, 가격 규제가 실제 건강 개선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며 “소비 감소뿐 아니라 대체당이나 다른 고당 식품으로의 소비 이동, 소득계층별 부담, 기업의 저당화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정책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