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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량경쟁에 함몰된 ETF 시장…혁신상품 승부할 때[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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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성 기자I 2025.09.02 17:17:17

'양적 포화' ETF…질적 성장도 챙겨야
'복제 ETF' → 과장광고…시장 신뢰 훼손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증권사 앱에서 검색을 해봤는데 이름도 비슷하고, 광고에서도 다 수익률 1위라고 한다. 도대체 어떤 것을 사야 하나.”

이제 막 재테크를 시작한 한 사회 초년생의 토로다. ETF 시장은 지금 선택의 홍수 속에 있다. 수많은 상품이 쏟아지지만, 차별성 없는 복제품에 운용사 간 싸움이 붙었고, 이 과정에서 과장된 광고가 덧칠되며 투자자들은 더 큰 혼란 속으로 내몰린다.

국내 ETF 시장은 가히 금융투자 버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2020년 불과 50조원 규모였던 시장이 단숨에 230조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축 성장의 이면에는 양만 늘린 ETF 복제품이 있다. 패시브형은 그렇다 치더라도, 액티브형은 지수도, 이름도, 구조도 닮은꼴인 상품이 쏟아졌다. 특정 테마를 뒤쫓거나 ‘TOP 3’, ‘TOP 10’ 등의 펀드 명도 유행처럼 번졌다.

문제는 양적 팽창으로 인해 운용사가 상품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많은 ETF를 소수의 인력이 관리하다 보니 한계가 뚜렷하다. 올해 초 발생한 실시간 추정가치(iNAV) 산출 오류 같은 사례는 급성장이 남긴 그림자다. 또한, 지금도 거래가 되지 않고 상장폐지만을 기다리는 ‘좀비 ETF’가 전체 시장의 4%를 차지한다. 하루에 1000주도 거래가 안 되는 ETF는 200여개가 넘는다. 단기 열풍 뒤 남는 것은 외면과 냉소뿐이다.

양적 팽창의 또 다른 부작용은 ‘과도한’ 광고 전쟁이다. 운용사들이 비슷한 상품 속에서 점유율 경쟁을 펼쳐야 하니 무리한 광고로 눈을 돌리게 된다. ‘최저 보수’라 했지만 실제로는 아니거나, 특정 기간만 골라 ‘수익률 1위’를 내세운다. 심지어 기초지수가 전혀 다른 ETF와 비교하며 자사 상품의 우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과장 광고는 투자자들의 선택을 왜곡하고, 궁극적으로 ETF 시장 신뢰 전체를 갉아먹을 수 있다. 한 번 잃은 신뢰는 개별 운용사를 넘어 시장 전체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 가장 큰 자산은 신뢰다.

과거 ETF 시장은 좁았다. 20여 년 전 한솥밥을 먹으며 ETF 시장을 일궈낸 운용역들은 이제 각사의 임원으로 자리 잡았다. 한다리 거치면 다 아는 사이였기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타 운용사와 유사한 아이디어나 상품을 내놓으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던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최소한의 예의조차 사라졌다. 복제와 모방이 난무하는, 무질서한 경쟁만이 남았다

투자자가 원하는 것은 ‘많음’이 아니라 ‘다름’이다. 삼성자산운용의 ‘버퍼형’ ETF나 키움투자자산운용의 프로텍티브 풋 전략을 활용한 ‘미국테크 월간 목표 헤지’ ETF 등 새로운 시도가 박수를 받는 이유다. 이는 광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상품 차별성과 혁신이야말로 시장 신뢰를 지탱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토대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양성 없는 풍요는 허상이며, 신뢰 없는 성장은 모래 위에 쌓은 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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