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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9일 오후 5시15분경 출입기자단에 메시지를 보내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계기 방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양측 간 협의 내용이)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며, 그밖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와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눈길을 끈 것은 박 수석 브리핑의 ‘톤’이다. 박 수석은 방일 최종 결정을 구술하면서 차분한 톤을 유지했다. 오전만 해도 박 수석은 일본 당국의 ‘언론플레이’에 유감을 표했지만, 최종 브리핑에서는 유감 대신 양국의 성과에 대해서 언급했다.
박 수석은 “한일 양국 정부는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 간 역사 현안에 대한 진전과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에 대해 의미 있는 협의를 나눴다”면서 “양측 간 협의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돼 상당한 이해의 접근은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도쿄올림픽은 세계인의 평화 축제인 만큼, 일본이 올림픽을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를 희망한다”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소마 공사의 부적절한 발언이라든지,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반응 등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한일 정부 간 지난한 ‘샅바싸움’에 감정의 골이 얕지 않은 상황이지만, 향후 한일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미일 공조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문 대통령이 여전히 판단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이번 정부 임기 말까지 계속 일본과 대화 노력을 해나가고자 한다”면서 “한일 정상 간 만나게 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이 좋은 기회로 기대를 했는데 아쉬움이 크다”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양국 간 과거사 문제 등 협의에 대한 진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외교적 협의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며 “전반적으로 조금씩 진전은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양국 현안을 전반적으로 협의했고, 궁극적인 목표는 관계 복원이었으나 아직 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봤다”고 덧붙였다.
◇靑 내부는 ‘부글부글’…소마 망언, 재뿌렸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다음’을 기약하며 덕담을 내놨지만, 청와대 내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특히 소마 총괄공사가 ‘될 뻔한 밥’에 재를 뿌렸다는 뉘앙스가 읽힌다.
청와대 관계자는 소마 총괄공사가 문 대통령을 가리켜 ‘마스터베이션(자위)’을 운운한 데 대해 “용납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면서 “국민 정서를 감안해야 했고, 이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회의적으로 변화했다”고 답변했다.
일본 측이 소마 총괄공사의 발언에 유감을 표했지만, 그보다 더 성의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해 주한일본 대사가 매우 유감스럽다고 공식 표명한 데 이어, 이날 오전 일본 정부 차원에서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발표한 것에 주목한다”면서도 “일본 정부는 적절한 후속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할 것이며, 향후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실제 소마 총괄공사의 해당 발언 이후 국내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일본 측의 ‘독도 도발’로 도쿄올림픽에 대한 여론이 안 그래도 나쁜 와중이었다. 해당 발언 이전 여론조사들에서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없다면 문 대통령이 올림픽에 참석하지 않아야 한다”는 응답이 10명 중 6명에 달했다. 지금은 여기에 비할 수 없는 격렬한 방일 반대 여론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은 물론, 한때 대신 방일할 것으로 거론됐던 김부겸 국무총리 역시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 정부 대표단 대표 자격으로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 대통령의 방일을 둘러싼 한일 양 당국 간의 기싸움은 이달 초부터 지난하게 이어져왔다. 지난달 G7(주요 7개국) 회의에서 한일정상간 약식회담이 몇 차례 시도 끝에 불발되자, 곧 이어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이 떠오르면서다. 특히 일본 언론을 통해 한일 정상회담 관련 내용이 알려지고, 한국 측에서는 일본 정부의 ‘언론플레이’를 비판하는 공방이 이어졌다.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그랬다. 박 수석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와 인터뷰하고 “저희는 일본 정부가 특정 언론을 이용해서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 바 있다”며 “일본 정부가 특정 언론을 통해 소마 총괄공사 문제에 대해 슬그머니 이렇게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