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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3월 10일 국고채 입찰 담합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5개 국고채 전문딜러(Primary Dealer, PD)사에 과징금 처분 계획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통보했다. PD는 시장에서 국고채 인수 권한을 부여받아 입찰에 참여하고 호가조성과 유통, 보유 등의 시장조성 의무를 수행한다.
앞서 2023년 6월부터 공정위는 국고채 PD로 지정된 은행(KB국민, IBK기업, NH농협, KDB산업, KEB하나, SC제일, 크레디아그리콜)과 증권사(교보, 대신, DB금융투자, 미래에셋, 삼성, 신한투자, 한국투자, KB, NH투자, 메리츠, 키움) 등 18개 금융사 대상으로 국고채 금리 담합 조사를 벌여왔다.
국고채 PD사들은 국고채 경쟁입찰에서 국채를 매입해 기관 또는 개인투자자에게 매각하는 역할을 한다. 입찰에서 PD사들이 금리를 적어 내면 채무자인 정부가 낮은 금리를 제시한 PD사부터 순서대로 낙찰하는 식이다. 공정위는 여기서 PD사들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입찰 정보를 메신저 통해 논의하는 등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고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입찰담합 혐의는 위반행위 중대성에 따라 관련 매출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매우 중대한 위반 행위의 경우 10.5(이상)~15%(미만), 15(이상)~20%(이하) 수준이다. 공정위가 산정한 관련 매출액은 총 76조 2346억원으로 전해지며, 과징금 예상액은 매출의 10~15% 수준인 7조 6235억~11조 4352억원으로 추산됐다. 제재 대상 가운데 3곳은 자진신고제도(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을 감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5개 금융사 의견서 제출은 지난 11일까지이나 대부분 기한을 연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연장을 통해 의견서 제출 시한이 약 4개월 정도 남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공정위 심사보고서 관련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정리한 의견서를 법률대리인을 통해 제출하는 등 신중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고채 입찰 관련 대부분 금융사는 국가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사명과 금융시장에서의 위상 제고를 위해 참여하는 것”이라며 “담합으로 지목된 건 대부분 일부 회사들이 낙찰 목적보다는 입찰 참여 실적 인정을 위한 투찰에 관한 것으로 공정위 전원위원회에서 충분히 소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금융사들의 의견 제출 절차가 마무리되면 전원회의를 통해 제재 수위를 최종 결정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심사보고서 발송 후 피심인 의견이 아직 송부 안 된 상태”라며 “심의 일정은 미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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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조단위 과징금에 대해 금융사들은 국고채 입찰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재라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PD사들이 독점적 이득을 취하려고 국고채 입찰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입장”이라며 “PD사 업무를 통한 수익이 적거나 때로는 손실을 볼 때도 있는데 이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한 제재”라고 지적했다.
최근 국고채 입찰 결과만 보더라도 통상적으로 낙찰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낮았다. 지난 1일 진행한 국고채 30년물 통합발행 경쟁입찰 결과 낙찰금액은 5조 7000억원, 낙찰금리는 2.605%로 집계됐다. 입찰이 오전(10시 40분∼11시)에 이뤄졌던 점을 고려, 이날 30년물 오전 시장금리는 2.613%다.
3월 5일에 진행한 국고채 30년물 입잘에서도 낙찰금리는 2.590%로 시장금리(2.597%)보다 낮았고, 2월(4일, 낙찰금리 2.730%, 시장금리 2.730%)과 1월(7일, 낙찰금리 2.705%, 시장금리 2.708%)도 다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국고채 가격은 이자율과 역관계이므로 낙찰가격이 시장가보다 낮았다는 것은 PD사들이 손해를 봤다는 것”이라며 “실제로는 손실을 감수하며 국가 시책 협조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 담합으로 오해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낙찰금액을 매출액으로 간주하며 과징금이 조단위로 산정됐다”며 “발생한 수수료 수익을 기준으로 산정했다면 이해 가능한 수준이나 매출 기준은 납득되지 않는다. 또 과대 산정된 과징금이 그대로 부과되면 금융사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국채 조달 비용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PD사들은 시장금리 대비 1베이시스포인트(1bp=0.01%p) 안팎의 수준에서 국고채 금리를 써낸다”며 “하지만 공정위 조사로 메신저도 없어졌고 딜러 간 대화도 거의 끊긴 상황이다. 입찰에서 금리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이라 정부 차원에서 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