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이른바 깜깜이 확진자 비율이 이달 초 13.2%를 찍고 코로나19 환자 1명이 전파하는 대상자 숫자를 나타내는 재생산지수가 1을 넘어서는 등 대규모 재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병원 출입이 잦은 제약회사 직원들을 밀접·밀집도가 높은 행사에 참여토록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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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로슈는 9일 이데일리가 워크숍 개최에 대해 취재에 나서자 부랴부랴 대면 활동은 취소하고 온라인으로만 행사를 진행한다고 방침을 바꿨다. 이날 복수의 제약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제조사인 한국로슈는 오는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연례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연례 워크숍은 상반기 성과를 점검하고 하반기 전략 수립을 위해 여는 대규모 내부 행사로 전국에서 300여명의 직원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워크숍 장소를 여러 군데로 나눠 개최하기로 했지만 직원들의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통상 사내 워크숍이 열리면 참석자 전원이 밤 늦게까지 좁은 공간에서 술을 마시고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좋은 밀폐·밀집·밀접 등 이른바 `3밀`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것.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또다시 쏟아지고 2차 대유행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로슈가 보건의료계의 한 축으로서 안이하게 판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회사는 병원을 출입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이고, 전국 각지에서 열차와 비행기 등 대중교통도 이용하기 때문에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제2의 쿠팡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부에서는 행사 개최 시기와 방식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전략 수립의 중요한 시점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로슈에 정통한 관계자는 “회사 내부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아 직원들의 불안과 걱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이를 전해도 회사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으로 묵살되고 있다”며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필요한 것은 동의하지만 신규 확진자가 하루 30~50명씩 발생하는 시기에 전 직원이 단체활동에 참여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직원 감염을 막기 위해 거래처(병원) 방문도 자제하는 판국에 밤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행사를 강행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최근 대웅제약 영업사원들이 확진판정을 받은 뒤 제약사 직원 출입을 막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한국로슈처럼 민간기업이 수 백명이 모이는 내부 행사를 개최하더라도 방역당국이 선제적으로 파악해 예방조치에 나설 수 없다는 점이다. 공개된 일정이 아닌 데다가 방역당국에 일일이 통보할 의무도 없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한 행사 자제권고나 취소 요청은 더더욱 힘들다. 한국로슈는 관할 자치구인 서초구와 서울시에 워크숍 개최와 관련해 별다른 통보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로슈는 이데일리가 취재에 나서자 사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면 워크숍을 취소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내부 행사는 비즈니스 전략을 검토하고 우선 순위를 설정하는 매우 중요한 연례 비즈니스 미팅으로 임직원 안전을 위해 정부의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필요한 예방 조치를 모두 취한 상태에서 온·오프라인으로 병행해 진행할 예정이었다”고 워크숍 개최 추진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현재 서울에서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대면 행사는 취소하고 온라인 미팅으로만 진행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