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일본제철(옛 일본제철)은 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 손해를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대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5)옹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옹에게 지난 1년은 `희망 고문`과도 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대법원 판결 이후 1년 동안 배상은커녕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국민에게 감사…일본 정부·기업 사죄해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1년을 맞아 반성 없는 일본 정부와 기업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과 민변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 판결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인권 회복과 정의 실현을 고대해 온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며 “일본 정부를 비롯해 일본제철·미쓰비시·후지코시 등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일본 전범기업들의 비겁한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엔 일본 기자들의 모습도 여럿 보였다.
그러나 이춘식옹 등은 일본 측으로부터 1년 동안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했다. 강제노동에 대해 사죄한다는 의사 표시조차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판결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라며 판결에 따른 배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옹은 국민에게 고맙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올 7월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한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하자 “경제 보복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 같아 괴롭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는 이날 “(이렇게 많은 국민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다들 도와줘서 고맙다”며 “할 말이 많지만 목이 메어서 못 하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함께 자리한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90)씨는 “한국 사람을 동물 취급했던 걸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며 “아베부터 한국 사람들 앞에 빨리 나와서 무릎 꿇고 사죄하기 바란다”고 토로했다. 현재 강제 동원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매각해 판결에 따른 배상을 집행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해 놓은 상태다.
|
◇UN인권위 제소·국제노동기구 고발 진행…국제 이슈화
공동행동과 민변 측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강제노동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변 등은 이날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UN)에 진정을 제기했다. 김기남 민변 국제연대위원장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강제동원과 관련한 사안을 유엔 인권위원회 절차를 통해 제기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기하는 것”이라며 “유엔 인권이사회 총회 등으로 이 사안이 국제 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민변 측은 또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민변에 따르면 강제노동 피해자 28명은 서울에서, 54명은 광주에서 이와 관련해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기존 피소됐던 일본제철, 후지코시을 비롯해 쿠마가이 구미, 니시마츠 건설 등 피소된 일본 기업의 수도 늘어났다. 민변은 추후 소송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은 강제동원 문제를 국제노동기구(ILO)에 고발하기 위해 시민 10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엄미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일본은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 국민들의 노동을 강제노동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지난 1999년에 이미 ILO는 강제노동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며 “이번 9월 ILO 전문가위원회에 의견서를 다시 제출하는 등 이 문제를 정식으로 ILO에 제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