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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영국 정부는 경제 성장 촉진을 목표로 하는 450억파운드(약 73조원) 규모의 ‘미니 예산안’을 발표했다.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법인세 인상 계획 철회, 인지세 주택 가격 기준 상향 조정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들 정책이 영국의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확산되면서 영국 파운드화는 급락했고 영국 국채 금리가 급등(가격 하락)하는 등 금융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집권 보수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보수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등 거센 비난 여론도 형성됐다.
이에 트러스는 정책 발표 10일 만인 이달 3일 소득세 최고세율 45% 폐지를 번복했으며, 지난 14일에는 원래대로 법인세를 19%에서 25%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감세안 규모는 각각 20억파운드(약 3조원), 180억파운드(약 29조원)로 추정된다. 50억파운드(약 8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까지 무기한 보류되면서 ‘미니 예산안’의 감세안은 당초 계획보다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트러스의 최측근이었던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임명 38일 만인 지난 14일 전격 경질되고 당내 반대파인 헌트 전 외무부 장관이 후임으로 발탁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와 관련해 “현대 영국 정치에서 전례 없는 유턴(U-turn)”이라면서 “트러스의 ‘미니 예산안’은 너덜너덜해졌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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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감세 정책을 강행하고자 했으나 철회한 후폭풍에 트러스는 취임 한달여 만에 실각 위기에 놓였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트러스는 영국 의회뿐만 아니라 투자자들로부터 거센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제이미 월리스 하원 의원은 트러스에게 보낸 ‘퇴진 서한’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한 뒤 “최근 트러스 정부는 영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를 깎아내렸고, 보수당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균열이 갔다”며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비판했다.
스튜어트 로즈 보수당 상원 의원도 “총리는 기업, 투자자, 유권자, 당내 동료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면서 “그녀는 누구에게도 신뢰를 받지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타블로이드지 데일리메일은 트러스가 이끄는 보수당 의원들이 이번 주 트러스를 끌어내리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데일리메일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수당 소속 하원 의원 모임인 1922 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위원장에게 100명이 넘는 보수당 하원의원이 트러스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요청하는 서한을 제출하려 한다고 전했다. 현재 보수당은 당 대표 취임 후 1년까지 불신임 투표는 면제받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불신임 투표를 제안할 수 있도록 당규를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레임덕’ 상태가 된 트러스가 시장의 신뢰를 다시 받을지는 의문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날 영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0.4%에서 -1%로 하향 조정했다. 채권펀드 매니저 제임스 아티는 “트러스의 오락가락 행보로 영국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