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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찍고 아프리카 춤추며 제품 홍보…'1등 삼성' 뒤 '1등 영업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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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 기자I 2022.02.09 17:51:39

[인터뷰]삼성의 '乙'시절…해외 벽 뚫은 32년 영업맨 윤성혁 고문
美유통업체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삼성TV…이제는 '메인'에 자리
"고객의 요구 끊임없이 찾고 단기간 내 제품 개발 나서"
삼성의 노력 남겨야"…은퇴 후 '위기인가? 삼성하라!' 집필

[이데일리 김상윤 신중섭 기자]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당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미국 전자제품 유통매장인 ‘베스트바이(Best Buy)’를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소니·도시바 등 일본 제품이 전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한 반면, 삼성 제품은 먼지가 잔뜩 낀 채로 구석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전략회의를 열고 “전자 계열사 사장들은 삼성제품이 미국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임을 알게 됐을 것”이라며 “2·3등 회사는 미래가 없으니 앞으로 일류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삼성 브랜드 위상이 초라했던 시절 얘기다.

지금이야 삼성 제품을 서로 공급받겠다고 하지만, 당시만 해도 삼성은 유통업체에 철저한 ‘을(乙)’이었다. 최지성 당시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사장)은 베스트바이 임원도 아닌 일반 직원들을 직접 만나 유통업체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경청하면서 신제품을 준비했다. 베스트바이 담당 최초 주재원이었던 윤성혁 삼성전자 고문은 베스트바이 직원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친분을 쌓고 효율적 공급망 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삼성전자 TV는 2006년 기점으로 글로벌 최고 자리에 올라섰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윤성혁 삼성전자 고문


영업-개발 간 실시간 협업 통한 고객 맞춤 제품 개발

32년간 삼성맨 생활을 마감하고 ‘위기인가? 삼성하라!’ 책을 저술한 윤 고문을 지난 3일 만나 삼성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그는 “격의 없는 대화로 구매회사 직원을 감동시킨 삼성 CEO,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듣고 빠르게 본사에 전달한 영업맨들의 노력, 실시간으로 제품 개발에 나선 엔지니어들의 호흡이 없었다면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를 달성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윤 고문은 16년간 3차례 미국 주재원을 지냈고 4년간 아프리카에 나가 해외시장을 개척한 삼성전자의 ‘산증인’이다. 202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1년 동안 ‘작가’로 활동했다. 삼성에 대한 국민의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글로벌 1등을 달성하기 위한 그간 노력을 생생하게 기록에 남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삼성의 DNA로 △위기를 피하지 말고 돌파하는 능력 △문제발생 시 원인분석보다 해결책 찾는 문화 △고객과 신뢰 기반으로 계약 △고객 맞춤형 제품 제작 등을 꼽았다. 이런 DNA를 바탕으로 전쟁터 같은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았다는 의미다.

삼성 모니터도 과거엔 IBM 주문자생산(OEM) 방식으로 출시됐다. IBM은 복수의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공개입찰을 해 계약을 체결한다. 제품과 기술평가 단계를 통과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입찰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대만 등 경쟁사들의 기술력 정보뿐만 아니라 초저가 공세를 사전에 예측해야 하고, IBM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본사와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아 제품 개발도 이뤄줘야 한다. 당시 이익이 줄어들고 있는 IBM은 중저가 모니터를 출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칫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공급이 끊길 판이었다.

윤 고문은 “중국 업체들이 재료비 수준도 안 되는 믿기 어려운 초저가 공세를 펼친 상황에서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모델을 개발해야 했다”며 “본사영업, 개발, 현지 영업인력 간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3개월 만에 IBM이 요구사항에 맞는 모니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사들이 빠르게 기술을 복제하더라도 이런 삼성의 조직문화를 따라오긴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애플 아이폰과 맞먹는 경쟁력을 갖춘 것도 영업맨들의 노고가 뒷받침됐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한 이후 미국 통신업체인 AT&T는 애플과 독점 공급을 맺고 휴대폰 시장을 키우고 있었다. 삼성은 2010년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한 갤럭시S를 출시하면서 반격에 나섰지만 미국 시장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다른 통신사와 계약을 늘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삼성은 ‘호랑이 굴’인 AT&T를 뚫기로 했다. 윤 고문은 곳곳에 흩어져 있던 AT&T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연간 20만 마일 이상 비행기를 타면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찾아냈다.

윤 고문은 “다른 통신사와 달리 AT&T는 차별화된 기술을 적용한 독점 모델 출시를 좋아했다”며 “AT&T가 위성방송사인 디렉TV를 인수했을 때 기회가 열렸었다”고 회고했다. 갤럭시 태블릿PC에서 바로 위성방송을 볼 수 있도록 빠르게 기술개발에 나섰고, 소비자반응이 크자 AT&T는 초기 물량의 두배 이상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고객사 요구에 맞춘 신제품을 재빨리 개발한 것도 주요한 영업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댄스 추고, 먹방하고’..로컬마케팅

그의 2016년 아프리카에서 새 도전에 나섰다. 이미 글로벌 1등이었지만, 아프리카 시장은 달랐다.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아프리카 TV프로그램 ‘먹방 코너’에 출연해 갤럭시폰으로 ‘삼성페이’를 쓰는 방식도 보여주고, 갤럭시 S10 출시행사에서 직접 아프리카 댄스를 보여주며 아프리카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다. 아프리카 총괄 책임자가 선뜻 나서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윤 고문은 “아프리카 문화에 삼성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현지 상황에 맞춘 로컬 마케팅 등을 통해 시장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가 오더라도 피하지 말고 돌파하는 ‘삼성하라’ 정신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며 “늘 안주하지 않고 고객과 끊임없이 신뢰를 구축하면서 혁신했던 게 삼성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귀국 후 세종시에 안착한 그는 최근 권투를 배우고 있다. 당시 삼성 마케팅에 도움을 준 남아공 가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남아공에 계속 공헌할 방법을 찾고 고객을 중시하는 삼성의 DNA를 계속 퍼트리겠다는 그는 영원한 ‘삼성 영업맨’이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1등에 오른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저서 ‘위기인가? 삼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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