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거시경제 상황만 보면 지금은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가 아니지요. 그런데 또 정권의 의중도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잖아요.”
채권시장의 한 인사는 당초 ‘연내 인상 불가론자’였다. 집값만 잡기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너무 크고 무딘 칼’이라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금리정책은 한 번에 여러 곳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칼이지만, 한 곳을 예리하게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은 아니다.
인상의 관건은 경기 회복세 여부인데, 이 인사는 “인상에 돌입할 정도로 경제가 살아난 건 아니다”고 판단해 왔다. 섣부른 인상 카드가 부동산은 못 잡고 경기에 찬물만 끼얹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이 인사의 생각이 최근 미묘하게 바뀐 것이다. 본지가 지난 7일 “1.25%의 기준금리는 너무 낮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인터뷰를 보도하면서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이 인사는 “올해 인상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3일째 국내 채권금리 급등
시장이 갑작스러운 부동산발(發) 연내 기준금리 인상설에 출렁이고 있다.
9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서울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2.8bp(1bp=0.01%포인트) 상승한 1.833%에 거래를 마쳤다. 채권금리가 상승한 건 채권가격이 하락(채권 강세)한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난 2015년 5월26일(1.846%) 이후 무려 2년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당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1.75%. 현재보다 0.50%포인트 더 높았다. 한은 금리정책에 민감한 3년물 금리와 기준금리 수준이 과하게 벌어져 있다는 것은 시장이 이미 한 차례 이상의 인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기저에는 청와대가 있다. 김현철 보좌관은 7일 본지 인터뷰에서 “기준금리는 한은의 고유 권한”이라면서도 “(박근혜정부에서) 한은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고 고압적으로 기준금리를 너무 낮춰버리는 바람에 가계부채와 부동산 폭탄이 장착된 경위가 있다. 1.25%인 상황은 사실 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 인사들이 부동산 광풍의 원인 중 하나로 저(低)금리를 지목한 적은 있지만, 기준금리 수준까지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
이날은 특히 연내 기준금리 인상설에다 갑작스런 북한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금리가 더 튀었다. 3년물 금리는 이번주 들어 3거래일 만에 1.742%에서 1.833%로 급등했다.
5년물 금리도 전거래일보다 3.2bp 오른 2.038%에 마감했다. 이는 2년 전인 2015년 8월7일(2.039%) 이후 최고치다. 장기물도 약세 흐름을 피하지 못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7bp 상승한 2.338%에 마감했다. 2015년 8월10일 2.356%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시장에는 채권 매도세가 과하다는 인식도 없지 않으나, 채권 투자심리가 취약해지는(채권 가격이 하락하는) 흐름은 공고해지고 있다. 연내 인상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봤던 시장이 이제는 그 가능성을 가격에 본격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다른 인사는 “누구든 이런 분위기에서는 (저가 인식에 채권을 매수하기보다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추후 경기 회복세 지켜봐야”
이는 어색한 상황은 아니다. 금리정책 당사자인 한은도 두 달째 시장에 매파(통화긴축 선호)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중립금리보다 낮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재 기준금리 수준이 장기화할수록 각종 경제적 부작용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발 기준금리 인상이 과연 적절하냐는 점이다. 한은의 오랜 기조와 채권시장의 관측에 따르면 한두차례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집값이 잡힐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막 회복 기미를 보이려는 경기가 꺾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다가 국내 민간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경기 회복세의 탄력이 다소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은 금리정책의 기본은 경기와 물가다. 경기와 물가가 반등하고 있다는 한은 금통위의 자체 판단이 섰을 때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아직은 경기 회복세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기류가 없지 않다. 한은 금통위원들은 지난달 금통위 본회의에서 추후 금리정책의 관건으로 ‘민간소비의 개선’ 여부를 일제히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