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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보며 사모펀드(PEF)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게 사실입니다. 성숙기 전에 겪는 성장통 같습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최근 사태의 원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모펀드가 사모펀드답지 않게 설정되고 판매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금융위는 DLF 사태와 관련한 제도개선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주 중이면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손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손병두 “사모펀드는 성장통 중”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를 말한다. 1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할 수 없는 등의 규제가 있는 공모펀드와 달리 운용에 제한이 없다. 사모펀드는 전문투자형 헤지펀드와 경영참여형 PEF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손 부위원장은 “(최근 DLF 등) 다수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은 공모펀드로 판매해야 하는데 많은 규제를 피하려고 사모펀드 형식으로 팔렸다”며 “여러 투자자 보호 장치가 적용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금융감독원 검사 과정에서도 불완전판매 의심 사례가 상당히 발견됐다”고도 했다.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준법감시인, 위험관리책임자에 대해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기준 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관리·감독 소홀로 다수의 금융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방침이다.
손 부위원장은 다만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우를 범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사모펀드는 창업 생태계에 중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민간 모험자본”이라며 “그동안 자금 조달이 어려운 혁신기업은 보수적인 은행 대출에 의존했는데, 사모펀드가 그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사모펀드 총 설정액은 395조원으로 지난 4년간 시장은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전문 사모펀드 운용사도 당국의 규제 완화 직전인 2014년 10개사에서 지난해 말 169개사로 확 늘었다.
손 부위원장에 따르면 5G 이동통신 장비업체인 A사는 적자가 지속돼 2금융권으로부터 연 17%의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A사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봤던 한 사모펀드가 전환사채(CB)를 통해 자금을 지원했고, A사는 올해 3분기 매출액이 200% 이상(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그는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저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균형있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손 부위원장은 다음주 나올 DLF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사모펀드가 사모펀드답게 설정되게 하고 투자자 보호 장치를 한층 두텁게 할 것”이라며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역할 개선 필요한 시점”
이날 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한 한국증권학회의 신진영 학회장도 손 부위원장과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사모펀드의 확대는 전세계적인 추세로서 금융시장이 고도화 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며 “사모펀드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고 개인의 자산 관리를 효율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신 학회장은 그러면서 “빠른 규모 확대 과정에서 상품 개발, 운용과 판매 전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 나오고 있다”며 “사모펀드의 새로운 역할 정립과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의 발표도 이어졌다. 어준경 연세대 교수는 “사모펀드가 공시 의무에서 면제돼 투자처나 운용 방식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있다”면서도 “사모펀드가 가진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운용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순기능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