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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만화에 블랙리스트를 적용해 불이익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26년’의 제작사 대표를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을 심사위원 및 지원사업에서 배제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1일 “콘진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부터 블랙리스트를 가동해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를 지원 배제한 사실이 최초로 확인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2015 만화콘텐츠 창작기반조성 연재만화 제작지원 심사결과표’를 바탕으로 해당 사업의 심사 과정에서 콘진원 산업팀장이 참여해 세월호 참사를 다룬 만화에 최저점을 주는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에 불이익을 준 것으로 확인했다.
블랙리스트 대상이 된 작품은 우리만화연대 소속 만화가 유승하의 ‘끈’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과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만화다. 이 작품은 1차 서류평가에서 평균 78.6점을 얻어 심사대상 총 77편(총 169편 지원·92편 탈락) 중 전체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차 발표평가에서 평균 68.6점을 받아 66위를 기록해 총순위 54위에 머물렀다. 50위까지 지원하는 사업에서 탈락했다.
심사에 참여한 콘진원 산업팀장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끈’에 대해 “재난, 사회적 이슈를 만화로 풀어내는 시도가 긍정적 평가되지만 아직은 만화로 풀어내는데 시기 상조” “민감한 소재” “상업적 요소가 약함” 등의 이유를 들어 최저점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끈’이 지원에서 탈락한 요인은 이들이 최저점을 준 것이 결정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심사에 참여한 한 심사위원은 진상조사위에 “심사 당시 세월호 같이 정치색이 짙은 작품에 지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발언한 심사위원이 있었다”면서 “나아가 우리만화연대의 출품작 중 정치색을 띤 작품들을 문제 삼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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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조사위는 청와대가 작성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 방안’을 통해 최용배 영화사 청어람 대표, 오성윤 애니메이션 감독, 이진희 은행나무출판사 주간, 김보성 전 마포문화재단 대표, 김영등 일상창작예술센터 대표, 서철원 소설가, 김옥영 한국방송작가협회 고문 등 7명이 콘진원 사업 관련 블랙리스트에 올라 배제된 사실도 확인했다.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사유는 △영화 ‘26년’ 제작사 △영화 ‘26년’ 초반부 애니메이션 제작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방식 규탄 시국선언 △노무현 지지선언 △문재인 후보 대선광고 촬영 △용산참사 해결 시국선언 △전라북도 문화예술인 115명 문재인 지지선언 △문재인 멘토단 등이었다.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 이진희 주간, 오성윤 감독, 최용배 대표, 김옥영 고문 등은 청와대 문건이 작성된 2014년부터 공모사업 심사위원에서 배제된 것으로 파악됐다.
콘진원에서 블랙리스트를 통한 지원배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검이나 감사원, 문화체육관광부 기관운영감사에서도 콘진원과 관련한 블랙리스트 실행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콘진원은 송성각 전 원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상태임에도 원장의 개인 비리일 뿐이라며 블랙리스트 실행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해왔다.
진상조사위는 콘진원의 블랙리스트 실행이 ‘청와대-문체부-콘진원-지원사업 심사위원’ 단계로 상부의 지시가 하달돼 실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6년 진행된 ‘대중음악 공연지원 사업’과 ‘상반기 해외 음악페스티벌’ 심사 등 다른 사업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작동한 사실을 확인하고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