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인천의 왕산 마리나항. 선착장을 빠져나온 보트에 자율운항 시스템을 적용하니 선체가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트엔 선원이 함께 타고 있긴 했지만 운행 중 조타기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약 30분간 스스로 운항을 마친 보트는 선착장에 들어와 배를 육지에 대는 ‘접안’까지 스스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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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그룹 자율운항 선박 전문 스타트업 ‘아비커스(AVIKUS)’는 이날 국내 최초로 레저 보트 완전 자율운항 시연회를 열었다. 아비커스는 지난 2020년 12월 선박 자율운항 시스템 고도화·전문성을 위해 ‘현대중공업그룹 사내벤처 1호’로 설립된 기업으로, 현재는 첨단 항해보조·자율운항 솔루션 분야 연구·개발(R&D)에 힘을 쏟고 있다.
이날 시연회에 등장한 레저 보트는 겉보기엔 일반 보트와 다르지 않았지만 운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기존 선박과의 차이점이 드러났다. 아비커스가 자체 개발한 레저보트용 자율운항시스템 다스(DAS) 2.0·나스(NAS) 2.0이 탑재된 레저 보트는 미리 입력한 항해 정보에 따라 카메라와 인공지능(AI)이 주변 여건을 분석하며 스스로 선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항 내내 조타기에 손을 대는 선원이 하나도 없었지만 주변에 놓인 다른 보트와 장애물들을 인식하고 이를 피해 가장 안전한 항로로 주행했다. 아비커스 관계자는 “해당 보트엔 항로 계획, 자율항해, 충돌회피와 자동 이안·접안 기능을 지원하는 자율운항 솔루션이 적용됐다”며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원격 조종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 기술을 원격제어·선원 승선 여부에 따라 1~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아비커스는 선원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1단계 시스템을 상용화하고, 선원이 승선한 가운데 원격제어를 할 수 있는 2단계 시스템을 대형 선박에 탑재하는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아비커스는 올해 6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으로 세계 최초로 2단계 시스템을 적용해 대양 횡단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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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커스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자율운항 분야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배경엔 그룹 차원의 지원이 있다는 분석이다. 그룹 지주사인 HD현대는 지난해 1월 60억원을 출자해 아비커스를 100% 자회사로 편입했고 이어 같은 해 7월엔 신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8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정기선 HD현대 사장 역시 그룹 신사업 중 하나로 선박 자율운항 기술을 꼽고, 관련 연구·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앞서 올해 초 열린 CES 2022엔 조선업계 최초로 참가해 자율운항 선박 조감도를 내세웠다. 당시 정 사장은 “자율운항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해양모빌리티가 우리의 새 미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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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상선은 물론 레저 보트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자율운항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는데 아비커스는 두 시장을 함께 공략할 계획”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레저 보트가 1000만척이 넘는 데다 1년에 새로 만들어지는 보트만 20만척에 이르는 만큼 자율운항 솔루션에 대한 사업 기회가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