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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적진에서 악전고투(惡戰苦鬪)를 겪으며 온갖 정치 여정을 헤쳐온 정치인. 얼핏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에 발탁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야기다. 그가 이제 지역주의 극복을 넘어 지방분권 강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려 날갯짓을 시도한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제20대 총선에서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 그것도 난공불락(難攻不落)으로 통하는 정치 1번지 수성갑에서 극적으로 ‘배지’를 따냈다. 야당 출신으로는 31년 만에, 소선거구제하에서는 45년 만의 ‘쾌거’였다.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호남에서 3선에 오른 이정현 의원과 더불어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당내에서 ‘뚝심’과 ‘확장성’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배경이다.
승리는 하루아침에 일궈진 게 아니다. 4년5개월이 걸렸다. 제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12월 내리 3선을 거머쥐면서 당선이 보장됐던 지역구 군포를 버리고 가시밭길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19대 총선과 이어진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각각 40.42%와 40.3%라는 의미 있는 득표율만 남긴 채 고배를 마셨다. ‘제2의 바보 노무현’이란 별칭이 따라붙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의 행보는 그의 삶과 맞닿아있다. 과거 한겨레민주당에 입당해 꼬마민주당과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거치며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서 첫 배지를 단 김 후보자는 2003년 8월 한나라당을 탈당, 지금 해양수산부 장관에 발탁된 김영춘 의원 등 이른바 ‘독수리 5형제’와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창당에 합류했다.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지역주의 타파와 전국정당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서였다.
20대 총선에서 당시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꺾으며 정치적 위상은 급상승했다. 급기야 지난해 8월 제19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어진 ‘촛불 정국’을 거치며 지지율 부침을 겪었고 지난 2월 대선 도전 160여일만에 문재인·안희정·이재명이라는 큰 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부겸은 문재인처럼 참여정부의 정치적 계승자도 아니고, 안희정과 같은 노무현의 최측근 인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박근혜 탄핵’을 가장 먼저 외치며 시대적 흐름에 편승한 이재명과 같이 영리한 정치인도 아니었다”며 “김부겸은 좌고우면 없이 묵묵히 자기 가야 할 길을 가는 영락없는 ‘바보’ 정치인의 표상”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별다른 내상을 입지 않고 장관직을 하자 없이 수행한다면 차기 ‘대선후보’로 급부상할 인물”이라고도 했다.
김 후보자의 최대 과제는 문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지방분권 강화’를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그는 후보자 지명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명령은 수도권 기회독점 나누라는 것”이라며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제도화한 장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4선의 ‘대선후보급’ 장관의 등장에 행자부 내부에서도 ‘추진 동력이 갖춰졌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일각에선 김 후보자의 행정경험 부족을 약점으로 꼽지만, 여권 관계자는 “워낙 지방분권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분이라 행정경험은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