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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8일 김명수 대법원장 주재로 사법행정자문회의 정기회의를 열고 구속영장단계에서의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조건부 석방제도는 수사를 받는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경우 구속영장을 발부하되 현재 보석제도와 같은 조건을 달아 석방을 결정하는 제도다.
현재는 구속영장 청구 시 법원은 심사를 통해 ‘발부’나 ‘기각’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영장이 발부될 경우 피의자는 구치소에 수감되고, 기각될 경우 불구속 상태를 유지한다. 구속에 불복할 경우 구속적부심을 통해 다툴 수 있지만 이 역시도 ‘구속’이나 ‘불구속’ 중 하나만 해당한다.
◇피고인 ‘보석제도’ 유사방식 유력
법조계에선 피의자에 대해서도 재판에 넘겨진 상태인 피고인 ‘보석’ 제도와 유사한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현재 구속 피고인의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법원이 보석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보석금 납부, 주거제한, 공범 접촉 제한 등의 일정 조건 부과를 전제로 석방된다.
조건부 석방제도 역시 형사소송법상 보석 제도에 준하는 조건을 준용하는 안이 유력하다. 제도가 도입될 경우 조건부 석방 대상이 된 피의자의 경우 법원이 정해놓은 조건을 따를 경우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되지만, 조건을 어길 경우 곧바로 수감되게 된다.
보석제도가 활성화된 미국·영국 등에선 해외 선진국에선 이미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도 출석의무나 주거지 이탈 금지 등의 조건을 붙여 구속 집행을 유예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조건부 석방제도가 도입되면 구속과 불구속 사이에서 비례성 심사에 따른 다양한 결정이 가능하고, 영장심사 과정에서 적절한 석방조건을 모색해 피의자에 대한 무죄추정원칙을 지키면서도 피해회복 등 피해자를 위한 제도로도 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적절한 조건을 부과해 석방을 명할 수 있도록 할 경우 구속영장 발부나 기각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에서 벗어나 비례성 심사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절대 다수 찬성…판사 82% 찬성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조건부 석방제도 관련 일부 세부 쟁점에 대해선 재판제도 분과위원회에서 추가로 검토하기로 했다.
법조계 종사자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절대다수가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에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부 구성원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판사의 81.8%가 도입 필요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찬성한 판사들은 도입이 필요한 주요 이유로 “구속과 불구속의 경계에 있는 경우 구속을 하면서 조건부 석방을 하게 되면 구속과 불구속의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72.3%)는 점을 꼽았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소속 변호사를 상대로 한 조사에선 94.4%, 한국형사법학회가 소속 회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선 86.7%가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 논의는 20대 국회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