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전북 순창서 잠행해온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설 연휴가 끝나자 정치재개쪽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정 전 장관은 10일 저녁 늦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한 해 동안 많이 들었다. 여름에는 빗소리에서 배웠고 가을에는 단풍 물오르는 소리에서 느꼈다. 겨울에는 강산에 흩날리는 눈발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 사이 감자 꽃은 피고 졌다”며 지난해 4·29 재보궐선거 낙선 후 1년여 가까이 잠행해온 소회를 전했다.
정 전 장관은 “세상을 먹여 살리는 종자를 기르고 싶었다. 정치란 주권자에게 씨감자 하나씩을 나눠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전하고자 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시작한다”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겠다고 밝혔다. 공식화만 남겨 놓은 채 사실상 정치재개를 선언한 것이다.
첫 행보로 정부가 전날 발표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정 전 장관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만든 개성공단인데 그 실상도 의미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문을 닫았다. 한반도는 과거 냉전시대로 돌아가고 국가 리스크는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 뒤 “박근혜 정권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는 무지와 무능의 소산”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2004년 통일부 장관으로 개성공단의 첫 제품 생산을 지켜봤던 정 전 장관의 정치재개 일성이 남북문제라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정 전 장관이 정계에 공식 복귀해도 당분간 남북관계를 고리로 활동 폭을 넓혀나갈 것으로 관측되는 대목이다.
4·13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정치를 재개하면 총선 출마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정 전 장관은 출마 지역으로 전주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장관은 전주 덕진구에서 3선을 했다. 출마 지역과 함께 당적을 가질지 여부도 선택해야 한다.
현재 정 전 장관을 영입하기 위한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경쟁이 치열하다. 국민의당은 전북에 영향력이 있는 정 전 장관이 합류하면 광주전남에 부는 국민의당 바람을 전북까지 확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지도부와 의원들이 나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까지 나서 설득했던 더민주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접촉한데 이어 전북도당이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복당을 요청했다.
물론 지난 2009년 재·보선처럼 전북에서 무소속 연대를 형성해 독자노선을 견지할 가능성도 있다. 당시 정 전 장관은 전주 완산갑에 출마한 고 신건 전 의원과 연대해 무소속으로 동반 당선됐던 적이 있다.
정 전 장관 대변인인 임종인 전 의원은 “정치재개는 곧 할 예정이지만, 출마 여부와 무소속으로 출마할지, 국민의당에 합류할지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정 전 장관과 가까운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국민의당 인사와 정 전 장관이) 대화를 하고 있다. 아직 결론을 내린 상태는 아닌데, 조만간 정치재개 포함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면서 갈 길에 대해서 정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는 무소속 보다는 국민의당을 택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이미 문 전 대표를 만나 ‘지금은 다른 길에 서 있다’며 복당 요청을 거부했던 정 전 장관이 이를 번복하고 더민주에 복당하기는 쉽지 않다. 남는 선택지는 무소속 출마와 국민의당 합류다.
한 전직 의원은 “무소속으로 당선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회의원 한번 더 하는 거다. 국민의당에 합류하면 총선에 기여할 수 있고 정치적 미아였던 정 전 장관에게 공간이 열릴 수 있다. 국민의당은 정체성이 확립 안돼서 백지상태다. 정 전 장관이 진보블록을 형성해 대표주자가 되면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올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빠르면 다음주에 정치재개 여부를 포함해 향후 진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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