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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종이를 돌돌 말아 쌓은 듯한 형상. 조각을 회화로 집대성했다고 할까. 그런데 의외다. 묵직한 의미보다 가벼운 현실이 들었단 뜻이다. 작업의 출발이 ‘낙서’라니까. 게다가 그저 어느 탑이려니 했던 저 형상이 ‘자화상 18’(2023)이라고 하지 않는가. 작가 권회찬(28)이 ‘낙서의 초상’이라고 한 저 회색빛 조형물이 말이다.
왜 굳이 낙서일까. 작가는 “낙서란 게 그 사람의 정신성을 반영하는 제스처”라고 생각한단다. 그러니 낙서의 결과물은 그 사람의 초상과 다를 게 없다고. 그 ‘낙서의 초상’을 끌어내는 기법도 독특하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콩테’(흑연·목탄 등을 미세한 가루로 만든 안료분에 점토를 섞어 물로 반죽해 다져 구운 것)다. 캔버스에 콩테로 쓱쓱 그은 낙서가 ‘가상의 공간’을 만들게 하고, 몇몇 선을 추가해 낙서가 홀로 설 수 있게 한단다. 바로 2차원 평면을 3차원 입체로 변화시키는 거다.
입체라면 마땅히 그림자라는 게 생기지 않겠나. 맞다. 이후 머릿속에 구상한 빛을 쏴, 생길 법한 그림자까지 채색하고 나면 마치 진짜 같은 환영이 연출된다는 건데. 이유가 있다. “무의미한 낙서들도 실체를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작가의 이 작업을 두고 누구는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드는 그리기’라고 했다. 그리는 자체에 충실한다는 뜻일 거다. 이토록 치밀한 계산이 만든 ‘즉흥성’이라면 아닐 까닭이 없겠다.
7일까지 서울 중구 청계천로 더 소소서 김상소·박정윤·신재민·정주원·조완준·진예리와 여는 7인 기획전 ‘나의 회화적 순간’에서 볼 수 있다. 젯소 바른 캔버스에 오일·콩테. 116×91㎝. 갤러리소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