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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수원대 석좌교수(전 고용노동부 장관)는 8일 서울 중구 서소문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린 ‘2025 제3회 좋은일자리포럼’에서 “정년연장만으로는 고령자도, 청년도, 기업도 만족시키기 어렵다”며 “노동시장 구조를 함께 보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성장에도 고용지표는 호조…“돌봄·복지 서비스 증가, 단시간 근로 확대 영향”
이 교수는 고용시장 상황을 “전형적인 성장·고용 디커플링(decoupling)”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성장률이 1% 미만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도 고용률·취업자 증가세는 OECD 주요국 중에서도 가장 높고, 10월 실업률은 1%대 초반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이 교수는 “언뜻 보면 고용이 좋아 보이지만 고령화에 따른 돌봄·복지 서비스 증가, 단시간 근로 확대가 합쳐진 결과”라며 “실질적인 고용 여건을 보려면 확장실업률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장실업률은 일할 의사는 있으나 구직을 중단한 사람, 더 일하고 싶지만 기회를 찾지 못한 사람까지 포함하는 지표로 사실상의 실업 수준을 보여준다. 그는 “겉으로는 취업 상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이 부족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며 “단순 실업률로는 고용의 질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고용 지표 중 가장 악화된 부분으로는 청년 고용을 꼽았다. 청년고용률은 17개월 연속 하락했고 확장실업률도 15% 수준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청년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한 신호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청년층이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쉬는 인구가 늘고 있다”며 “청년 인구 감소, 경기 부진으로 인한 신규 채용 축소 외에도 구조적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구조적 요인은 △공채 폐지 후 경력 중심 채용 확산 △학교 교육과 산업 현장의 기술 미스매치 확대 △플랫폼·비정형 직무 증가 등이다.
특히 AI 도입이 단기적으로 청년에게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코딩만 배우면 취업이 되던 분야에서도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고 있다”며 “한은과 미국 스탠퍼드의 최근 분석을 보면 AI 노출 직무에서 청년 고용 감소폭이 가장 크다”고 했다.
“60세 정년연장 이후에도 권고사직·명얘퇴직 여전”
정년연장 논의와 관련해서 는2016년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 실질적인 고용효과를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년 규정은 바뀌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50대 초반의 권고사직·명예퇴직 비중이 줄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60세 이상 고령층 고용은 늘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청년고용 감소가 발생했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주된 일자리에서의 평균 이직 연령은 여전히 49세 전후”라며 “서류상의 정년과 실제 노동시장의 작동 방식이 다르다”고 했다.
기업들이 느끼는 정년연장의 어려움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청년채용 축소 부담, 인건비 증가, 재고용 제도의 실효성 부족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정년연장 논의는 ‘재고용 구조·임금체계·재취업 지원’을 세트로 다뤄야 해결된다”며 “단순히 정년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노동시장 전체의 균형을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AI 시대에 맞춘 직무·역량 기반 노동시장 전환도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서구는 1900년대부터 직무 중심 체계를 구축한 뒤 2000년대 이후 역량 중심 체계로 확장했지만 한국은 아직 직무 기준조차 미완성”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직업훈련도 여전히 하드스킬 중심이고, 청년 일경험 프로그램도 스펙용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NCS 기반 직무경험→국가 인증 구조로 재편해 청년이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쌓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고용정책의 방향성도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했다면, 이번 정부는 인구구조 변화에 맞춰 참여율 확대·취약계층 지원·고용서비스 혁신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역 주도의 일자리 정책, 경력설계 기반 고용센터 개편, 직업능력개발체계 혁신 등을 앞으로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이 교수는 “정년연장은 앞으로도 뜨거운 이슈가 되겠지만, 숫자 논쟁에 매몰되면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며 “청년고용 붕괴, AI 전환, 고령층 재고용 욕구, 임금체계 경직성 등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활동인구가 2028년부터 본격 감소한다”며 “노동시장 참여 확대와 인적자본 축적을 고용정책 목표로 새로 정립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