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조폐공사는 가짜 휘발유에 포함된 특정성분에 반응하는 ‘가짜 휘발유 판별용지(Gasoline-Check)’를 사상 최초로 개발했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관련 추가 R&D(연구·개발) 예산을 한 푼도 배정받지 못했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가짜 경유 판별용지 개발에 나설 계획인데 이대로 가면 예산 부담 때문에 가짜 석유 판별용지 연구개발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2013년 당시 가짜석유 유통에 따른 탈루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석유관리원, 동국대에 의뢰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가짜석유 탈루세액은 연간 총 1조910억원(2011년10월~2012년 9월)으로 추정됐다. 정상 휘발유·경유에 값싼 도료·시너 등 용제나 등유를 섞어 가짜석유를 만드는 수법으로 주유소나 업소들이 부당이익을 챙긴 것이다.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이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조폐공사도 대책을 고심했다. 이러는 사이 지난해 1월 조폐공사에 사내벤처가 출범했다. 소속 직원 3명은 가짜 휘발유 판별 용지를 만들기로 했다. 조폐공사는 화학 검사로 가짜 지폐·화장품·홍삼 등을 가려내는 위변조방지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연구진들은 이 같은 신기술을 가짜석유를 감별하면 탈세 방지 효과가 클 것으로 봤다.
사내벤처 직원 3명은 2년간 고생한 끝에 올해 가짜 휘발유 판별용지를 개발했다. 조폐공사는 지난 9월2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이어 조폐공사와 교통안전공단은 이달 1일부터 서울, 부산 등 전국 25개 자동차검사소에 이를 보급했다.
휘발유 한 방울만 판별용지에 떨어뜨리면 2분 이내에 가짜 여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병원에서 검사하는 것만큼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임신 테스트 기기처럼 소비자들이 빠르게 결과를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자체 예산 3억원을 투입해 만든 신기술로 1조원 가량의 가짜석유 탈세를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연구진의 이 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그동안 연구진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가짜 휘발유 판별용지 보급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가짜경유 판별용지까지 개발하려면 자체 예산으로는 힘들기 때문이다. 국책과제로 선정돼 예산을 받으면 보급 범위도 넓어질 수 있고 보다 빨리 연구개발을 완료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거절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가짜석유 유형이 여러 가지여서 이 용지로 모든 것을 잡을 수 없다”며 “조폐공사가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예산 지원은 기재부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기재부 관계자는 “법에 따라 예산 관련 의사결정은 정부와의 협의가 아니라 조폐공사 이사회의 의결로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정부가 각종 세금을 올리기 전에 새는 세금을 막는 방도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9월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사내벤처, 혁신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로드맵을 밝힐 예정”이라며 사내벤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