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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이데일리 김대웅 특파원] “두달 전부터 기다려 온 세탁기를 오늘 드디어 구입했어요. 혹시나 매진될까봐 12시전부터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30% 가까이 할인된 가격에 팔더군요.”(베이징 차오양(朝陽)구에 사는 41세 중국인 장모씨)
“평소 여러가지 건강식품을 먹는데 이번 기회에 거의 1년치 먹을 GNC 제품을 잔뜩 구매했습니다. 평소보다 절반 가까이 되는 가격에 구입해 횡재했다고 생각합니다.”(베이징 펑타이(豊臺)구에 사는 28세 한국인 이모씨)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光棍節)를 맞아 중국 쇼핑 시장에 난리가 났다. ‘지상 최대의 할인행사’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수 억명의 소비자들이 모바일과 PC를 통해 온라인 쇼핑에 나섰고 일부 제품들은 순식간에 동이 나면서 소비자들의 애를 태웠다. 이번 행사에서는 판매량의 3분의 2 이상이 모바일에서 이뤄져 알리바바, JD닷컴 등을 앞세운 중국이 ‘모바일 쇼핑 천국’임을 과시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 억명의 중국인들이 이번 행사를 기다렸다. 행사가 11일 자정(현지시간)을 기해 시작되면서 일부 직장인들은 새벽까지 쇼핑을 즐기느라 잠을 설친 채 아침 출근길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출근 후 사무실에서도 밤사이 각자가 구입한 제품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한 20대 중국인 여성은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 옷이 20~30% 가량 싸게 나와 나도 모르게 자꾸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됐다”라며 “쇼핑 두시간 만에 내 옷 뿐만 아니라 가족 옷을 모두 사버렸다”고 말했다.
중국 스타들도 이번 행사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수 천추성은 인터뷰를 통해 “이번 기회에 온라인으로 비행기를 구매하고 싶다”고 밝혔다. 중국 아이돌 가수 훠준은 “생방송이라 시간이 없어 사이트 ID를 어머니에게 넘기고 왔다”며 “어머니가 나의 쇼핑을 도와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국 전역의 대규모 쇼핑 축제로 부상한 광군제는 ‘1’이 네 개 겹치는 11월 11일과 독신자·홀아비·싱글 등을 뜻하는 ‘광군’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탄생했다.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93년 중국 난징대 학생들이 광군제 당일에 독자적인 기념 이벤트를 가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광군제를 본격적인 글로벌 쇼핑축제로 키운 것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그룹이다. 알리바바는 지난 2009년 광군제에 맞춰 파격적인 50% 할인행사를 진행하며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커져가는 온라인 쇼핑 시장과 함께 알리바바는 매년 대규모 행사를 열었고 광군제라는 새로운 쇼핑데이가 탄생하게 됐다.
올해 광군제는 ‘세계화와 모바일화’라는 테마 속에 전세계 4만개 이상의 기업과 3만여 브랜드가 참여했고 180여 나라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광군제 행사 시작 1시간 만에 스마트폰 등을 통한 모바일 구매가 2700만건을 넘었다고 전했다. 알리바바는 이날 주문받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170만명의 배송원과 40만대의 차량, 200대의 화물 비행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특히 올해는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항저우를 떠나 행사 본거지를 베이징으로 옮겼다. 블룸버그통신은 알리바바가 경쟁업체 JD닷컴을 견제하는 동시에 회사 전체적으로 분위기 반전을 모색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야제 마케팅을 통해 모바일에 집중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알리바바는 광군제 전야제에 미국 ‘아메리카 아이돌8’의 준우승자 아담 램퍼트와 영화 제임스본드의 주인공 대니얼 크레이그를 초청했다. 화려한 버라이어티쇼를 방불케 한 특집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온·오프 마케팅을 집중하며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번 행사에서 중국산 중저가 스마트폰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메이주, 화웨이, 샤오미 등 스마트폰 제품이 판매 상위권을 휩쓸며 불티나게 팔렸고 외국산 제품 가운데는 분유가 가장 인기를 끌었다. 한국산 제품은 화장품 등 대부분 미용 상품이 차지했다.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면서 매출 규모도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날 자정을 기점으로 12분만에 100억위안(약 1조81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00억 위안을 달성한 37분보다 시간을 앞당겼고 이날 반나절 동안 571억위안(약10조3077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작년 전체 실적을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빛좋은 개살구’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인기 제품의 경우 할인폭이 미미하고 재고가 많이 쌓인 제품 위주로 할인폭이 크다는 얘기다. 한 30대 중국인 여성은 “이번 기회에 샤오미의 신제품 TV를 구입하려 했는데 평소 가격과 거의 비슷해 구매하지 않았다”며 “내가 관심있는 제품은 거의 할인폭이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