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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결혼 잔소리에 고향 대신 도서관·해외·회사로 피난

신하영 기자I 2016.09.13 20:08:52

싱글족·취준생 ‘결혼·취업 잔소리’에 귀성 포기
여행사, 학회 초대장 등 ‘알리바이용’ 상품도
일부 학원 취준생들 위해 강의실·열람실 개방

지난해 9월 추석 연휴기간 학원을 찾아 공부하는 취업준비생들(사진=파고다어학원)
[이데일리 신하영 고준혁 기자] 공기업에 다니는 ‘골드미스’ 김영선(39)씨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14일 유럽으로 출국한다. 이번 연휴는 18일에 끝나지만 김씨는 19일부터 연차휴가를 붙여 20일까지 쉰다. 유럽여행은 친구들과 떠난다. ‘결혼하라’는 친인척들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는 “연휴 내내 친척들 잔소리를 듣느니 비슷한 처지의 지인들과 해외여행을 떠나는 게 낫다”며 “부모님께는 지난 주말에 미리 찾아뵙고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향 길 교통 혼잡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아예 귀성을 포기하거나 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싱글족’이나 취업준비생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인척들이 부담스럽다. 이들은 명절을 피해 도서관이나 해외, 심지어 회사로 피난을 떠난다.

◇ “취직은?···악의 없이 물어봐도 스트레스”

서울 노량진에서 학원을 다니며 4년째 경찰공무원시험에 도전 중인 김모(29)씨는 지난주 부모님을 뵈러 경기도 평택에 다녀왔다. 명절 때 집으로 찾아오는 친척들을 피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부모님이야 제 사정을 잘 알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은 취업 문제를 물어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어떤 악의를 갖고 ‘취업 언제 하느냐’고 묻는 게 아니어도 견디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방송국 프로듀서(PD) 지망생인 박 모(26·여)씨. 서울에서 3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그는 올해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작년 추석 때 찾아 뵌 부모님이 “그만 접고 내려와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상경을 만류해 애를 먹었다. 박 씨는 “올해 설부터 명절 때도 집에 내려가지 않고 있다”며 “고향에 내려가 봤자 눈치만 보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 도서관은 취업준비생들에게 훌륭한 피난처다. 최모(25·여)씨는 “연휴 기간 내내 학교 도서관에 있으면서 취업을 준비할 예정”이라며 “졸업반이라 하반기 취업 시즌에 지원할 자기소개서 등을 작성해야하기에 귀성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 학원 강의실 개방···여행사·호텔 추석 상품도

명절 연휴기간 자습공간을 대피소로 제공하는 학원도 있다. 파고다어학원은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강남·종로·신촌·부평·부산서면 지점의 강의실·열람실을 개방한다. 귀성을 포기한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자습공간을 제공하는 것. 학원 관계자는 “연휴기간 스터디공간을 찾는 학생들에게 음료· 간식 등을 제공한다”며 “전국 5개 지점에 1000명~1500명 정도가 방문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추석연휴기간 번잡스러운 한국을 떠나 해외에 머물기도 한다. 국제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을 준비 중인 김모(28) 씨는 연휴기간 내내 미국에 머무를 예정이다. 그는 “학회 일정이 추석 연휴 기간 중 끝나지만 비행기 티켓은 연휴 끝나는 날에 맞춰 끊었다”며 “연휴 동안 조카, 친척 어른들과 불편하게 지내느니 편하게 여행이나 즐기는 게 낫다”고 말했다.

여행사들은 발 빠르게 관련 상품을 내놨다. 한 중견 여행사는 아예 추석 연휴 기간 중 도피(?)가 가능하도록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도피의 품격’ 이벤트를 출시했다. 고객이 원하면 국제학회 초대장도 발급해준다.

호텔들도 명절 특수를 노리고 있다. 2~3일 머무르며 뷔페·사우나·수영장 이용이 가능한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고객 유치에 나섰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모(29·여) 씨는 “명절 때면 결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추석 당일을 전후해 호텔에서 마시지도 받고 피로를 풀면서 혼자 조용히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 “차라리 회사에서”···당직 자원도

회사는 훌륭한 피난처다. 추석 당직 대타는 추석을 나홀로 보낼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이다. 동료들의 감사는 덤이다.

가구회사에 다니는 노모(32) 씨는 “결혼을 미루고 있는 터라 추석 때 집에 가면 어른들께 ‘언제 결혼하느냐’란 잔소리를 듣게 된다”며 “꽉 막힌 도로를 몇 시간씩 내려가는 것도 스트레스라 일부러 회사 당직을 자처했다”고 말했다.

결혼을 앞둔 회사원 이모(31)씨는 여자 친구와 동남아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는 “어차피 내년에는 결혼해 명절마다 양가 부모님, 친척들을 찾아다녀야 한다”며 “올해가 명절 연휴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베트남과 라오스 등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전국 성인 100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명절이 즐겁지 않다’는 응답이 30%(303명)를 차지했다. 이들은 △경제적 부담(47%) △가사 부담(15%) △부담스러운 친척(8%) 등을 즐겁지 않은 이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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