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5000만원에 머물고 있는 예금보호 한도가 이번에는 상향조정될 수 있을까.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예보) 등이 23일 관련 논의를 위한 ‘킥오프’ 회의를 시작하면서 관심이 쏠린다.
|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예금보호 한도 상향 여부다. 예보는 금융회사가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고객에게 예금을 내줄 수 없을 때 대신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 중인데, 1인당 보호한도가 2001년부터 최고 5000만원으로 설정된 뒤 변동이 없었다. GDP(국내총생산)가 그간 크게 늘어났고 개인의 자산도 증가한 만큼 한도를 1억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다만 금융위는 이날 간담회는 관련 논의를 시작하는 ‘킥오프’ 회의 성격이라며 예단을 경계했다. 고 위원장은 “예금보호 한도 상향에 대한 의견이 그간 많았지만 지금 결론을 낼 수는 없다”면서 “GDP 규모 등을 보면 한도를 상향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금융사들의) 예보료 부담도 커지는 부분이 있다.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정부는 실제로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김태현 예보 사장은 “금융위와 함께 외부 연구용역, 민관합동 TF(태스크포스) 논의 등 충분한 검토를 거쳐 내년 8월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현행법상 예보료율 상한을 국회가 3년마다 심사하도록 되어 있는데, 다음 심사가 2024년 8월인 점을 고려해 그 1년 전까지 내용을 관련 내용을 모두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이날 금융사들의 예보료율을 조정하는 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고 위원장은 “예보료를 납부하는 각 금융업권의 특수성, 과거 구조조정 비용의 정리·상환계획 등도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당초 예보는 2026년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종료하고, 2027년에는 공적자금 상환기금을 청산할 계획이었다. 이 경우 금융사들의 예보료 부담을 낮춰줄 여력이 생기게 되는데, 실제 계획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예금보호 한도를 상향하는 등 변수에 따라 금융사들의 예보료 부담이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고 위원장은 이날 최근 전세계적으로 금융불균형 심화 가능성이 커진 것을 언급하고 예보가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다. 고 위원장은 “최근 들어 잠재적인 위험요인이 현실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그 어느 때 보다도 금융안전망의 핵심 기관으로서 예보에 더욱 막중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가 위험을 찾아내기 전에 위험이 우리를 먼저 찾아낼 수 있으므로 각 경제주체들이 다가올 충격에 단단히 대비할 수 있도록 예보가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고 위원장은 이어 “예금보험제도는 외환위기, 저축은행 부실사태 등 금융시장의 불안과 위기 때마다, 우리 경제가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주었다”며 “올해부터는 대형금융회사의 부실화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 금융회사의 정리계획(Resolution plan)을 작성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비은행 부문이 급격히 성장하고 금융과 IT(정보기술)의 융합으로 인해 새로운 금융서비스 등장이 잇따르고 있다”며 “비은행 부문 단기자금시장의 확대, 선불전자지급수단 등 새로운 금융서비스의 등장은 ‘예금 등의 보호’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예금보험기구의 위기대응을 취약하게 하고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도 예보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는 “향후 예보제도 개선 검토 과정에서 예보료율, 예보한도 등은 금융업권 간 경쟁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소현 이화여대 교수는 “인구 구조, 금융자산 비중 등 소비자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예보한도 변경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적정 예금보험료율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2027년 종료 예정인 예금보험채권상환기금의 처리방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