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황현규 김보겸 기자] 반일 운동이 일본 제품 보이콧을 넘어 거리 시위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부산 일본영사관에 대학생들이 침입한 데 이어 서울 곳곳에서도 일본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가 벌어졌다. 독도·강제징용 피해자·항일 단체 등 다양한 반일 단체가 거리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이 계속되면서 누적된 반일 감정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다만 폭력적인 시위로 이어질 시 오히려 한·일 문제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베 사진 가위로 자르고 밟기도…독도·항일 단체 잇딴 집회
낮 최고 체감온도가 40도가 넘는 23일, 시민단체 독도사랑세계연대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개최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진을 짓밟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한복을 입은 20여명의 단체 회원들은 이날 욕설이 새겨진 아베 총리의 사진을 가위로 찢고 발로 밟았다. 김영삼(92) 독도사랑세계연대 총재는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탈하고 독도를 훔쳐가려 한 나라”라며 “역사적 과오도 모자라 지금은 경제를 빌미로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총재는 “한국인으로서 이 현실을 좌시할 수 없어 칼을 빼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는 30여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같은 날 오후 시민단체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도 옛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이들은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이 일종의 정치적 술수라고 비난했다. 항단연은 “아베 정부는 한국경제에 타격을 주는 수단을 사용해 일본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 있다”며 “극우세력을 집결시켜려는 의도를 우리는 이미 간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일본 불매 운동을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과거) 일본 상품을 구매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뇌리에서 잊어주기 바란다”며 “일본 정부가 경제보복을 철회하는 것만이 일본 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임을 아베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단연은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내용을 담은 항의서를 작성해 일본 대사관에 전달했다.
|
◇극한 분노 표출로 과격 시위 가능성도…외교부, 우려 표하기도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보복 등이 계속되는 한 반일 거리 시위가 앞으로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폭력 시위로 변질 될 경우 반일 운동의 목적인 일본의 태도 변화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대학 교수는 “일본 제품 불매를 비롯해 거리 운동까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강제에 의한 참여가 아니기 때문에 뚜렷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도 반일 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안일한 태도나 일본 정치인의 망언들이 계속 되면서 분노한 한국인들의 반일 운동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앞서 유니클로의 한 임원은 자사 제품 불매 운동을 두고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다만 시위가 폭력적으로 이어질 시 오히려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참여 인원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질 수록 거리 시위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의 반일 거리 시위도 폭력 시위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총리 사진·일장기 훼손, 건물 침입 등 과격한 시위로 진행될 수록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여론도 급격히 냉랭해 질 수 있다”면서 “강제 징용 문제 해결·경제 보복 철회 등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2일 부산 지역 대학생 6명이 부산 동구에 위치한 일본영사관에 침입해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발생, 외교부가 “외교공관의 안정을 교란하는 행위가 발생한 데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