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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15일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0.5%로 1년 2개월째 동결했으나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에 무게를 실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상당히’, ‘과도하게’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써가며 부채 증가와 함께 커진 자산가격 거품을 강력하게 경고했다.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낸 금통위원은 7명 중 고승범 위원뿐이었지만, 대다수 금통위원들도 금리 인상을 더 늦춰선 안 된다는 데 합의했다. 10월 기준금리 인상 전망이 후퇴하고 8월 인상설이 힘을 얻고 있다.
◇“빚투 의한 자산가격 거품, 가장 큰 문제”
이날 이 총재의 기자회견 내용을 살펴보면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하면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영향을 한 번 더 지켜보기 위해 금리를 동결했을 뿐 사실상 금리 인상을 위한 판을 깔았다고 할 수 있다. 통화정책 방향 문구엔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를 추가해 한 두 차례 기준금리를 올려도 긴축이 아니라는 점을 또 다시 강조했다.
이 총재는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부채, 수익 추구 행위가 상당히 과도하다”며 빚투, 자산가격 거품을 경고했다. 특히 집값에 대해선 “상당히 고평가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수도권의 소득대비 주택 가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와 있다”고 지적했다. 올 3월말 기준 서울지역의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17.4배(KB국민은행 시세)로 월급 한 푼 안 쓰고 17년 4개월을 모아야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1년 전보다 3년 5개월이나 늘어났다.
빚투에 의한 자산 가격 상승이 가장 큰 문제다. 이 총재는 “우리가 문제를 삼는 건 가격 상승이 부채 증가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것”이라며 “차입(대출)에 의한 자산 투자가 높다는 점은 다른 나라와 대비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40%로 다른 나라 대비 강력한 대출 규제를 시행하는 데도 가계부채는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 금융권 가계대출은 63조3000억원 증가해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증가폭을 보이는 등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이는 ‘빚투→자산 가격 상승→자산 취득을 위한 빚 규모 증가’로 빚과 자산가격이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 대출 규제가 강력한 데도 ‘빚투에 의한 자산 투자’가 줄어들지 않으니 금리 인상이란 큰 칼을 뽑아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대출에 의한 자산투자를 시급히 해소해야 하는데 이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에 자꾸 (금리 인상을) 지연시킬 게 아니고 어떻게든 빨리 개선해 나갈 노력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히려 코로나19는 경제 성장을 꺾을 변수는 아니라고 봤다. 그는 “대규모 백신 접종이 예정돼 있고 백신의 중증 방지 효과가 상당히 입증돼 있다. 경제주체의 감염병 학습 효과도 높아졌다. 다른 형태로 소비활동을 이어갈 것이다”며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도 일정 부분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코로나19 확산에도 올해 5월 전망했던 4% 경제성장률이 달성될 것으로 예측한데다 물가상승률은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1.8% 전망치를 웃돌 가능성을 열어뒀다.
◇더 늦어질수록 금리 인상 실기론 대두
그러나 코로나19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이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원들의 마음은 다급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강력한 거리두기에도 1000명대에서 꺾이지 않거나 가을 대유행설이 현실화된다면 ‘금리 인상 실기론’이 대두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2018년에도 금리 인상 실기론이 번진 바 있다. 한은은 2018년 상반기부터 금리 인상 시그널을 줬는데 시간을 끌다 그 해 11월에야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을 하향 조정하면서 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계층은 자영업자 등으로 특정되는데 이는 금리 인상을 미룬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손실 보상, 원리금 상환 유예 등 계층을 타게팅한 재정정책으로 보전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이 총재는 “효과 빠른 재정정책의 선별 조치를 통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라며 “(한은도) 9월 종료되는 소상공인(3조원 한도 중 2조원 소진)이나 코로나19 피해기업(13조원 한도 중 12조6000억원 소진)을 위한 금융중개지원대출 제도를 연장하거나 필요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세를 이유로 금리 인상이 지연되면 빚투, 자산거품 시한폭탄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폭탄이 터진 후엔 금리 인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자산 가격 하락에 빚을 못 갚는 상황에서 소비를 늘릴 사람은 없을 뿐 더러 가계의 채무불이행은 금융기관 자산건정성 악화, 금융시장 붕괴,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은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8월말 께 백신접종률이 높아지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대에서 서서히 줄어들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8월 금통위때 1000명대 이하의 확진자 수, 5월 수준의 경제전망은 금리 인상을 위한 충분 조건이 된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상 전망 시기를 10월에서 8월로 앞당겼다. 씨티은행은 종전 10월과 내년 2월 금리 인상 전망을 각각 8월과 내년 1월로 앞당겼다. JP모건은 기존의 10월 인상 전망을 유지하되 8월 인상 전망 가능성 또한 열어뒀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소수의견을 고승범 위원(한은 추천 위원)이 냈다는 게 더 매파적”이라며 “사실상 총재, 부총재 포함 3명이 금리 인상 소수의견일 수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 시기가 10월에서 8월로 당겨질 것”이라고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