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공산주의자" 고영주·신연희 잇따라 무죄 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영주(69) 전 이사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발언자의 주관적 판단에 해당해 명예훼손 대상이 되는 ‘사실이나 허위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판단의 근거다. 앞서 법원은 신연희(70) 전 강남구청장의 동일한 발언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는 고 전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공산주의자’ 용어가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주관적 평가 영역에 속하는 이상 명예훼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공산주의자’ 용어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선 주로 ‘북한 추종자’라는 부정적 의미로 통용되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사정만으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부정적 의미를 갖는 사실 적시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라는 평가는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좌우되는 상대적 측면이 있다.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이에 대한 생각이 같을 수 없듯이 고 전 이사장과 문 대통령 입장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산주의자는 ‘북한 정권과 대통하거나 긴밀한 관계인 사람’ 뿐 아니라 단순히 ‘북한 정권에 우호적이거나 유화적 정책을 펴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이를 때도 쓰인다. 공산주의자라는 용어가 반드시 북한 주체사상이나 유일영도체제를 추종한다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우리사회에서 ‘공유재산제를 지지하는 자’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폭넓게 쓰이고 있는 만큼 단순히 사상에 대한 평가만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공적 존재가 국가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정치적 이념은 더욱 철저히 검증돼야 하고 이에 대해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허용돼야 한다”며 “정치적 입장이나 주장과 철학은 공론의 장에서 가장 잘 평가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 신 전 구청장은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허위비방 혐의로 1심에서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해선 무죄 판단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판단은 지난 2월 신 전 구청장 공직선거법 사건 1심의 판단과 대동소이하다. 신 전 구청장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조의연)는 신 전 구청장의 카카오톡 메시지 다수에 대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어느 한 개인이 공산주의자인지 여부는 갖고 있는 인식, 견해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자로서의 객관적·징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며 “신 전 구청장은 ‘사드 배치 반대’ 등 21개 항목을 근거로 열거한 후 ‘공산주의자’라는 결론을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산주의자인지에 대한 평가는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좌우되는 상대적 측면이 있다”며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평판을 손상하는 추상적 평가나 판단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