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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베이징역에 '우한 승객' 내렸지만 체온 측정·소독은 없었다

신정은 기자I 2020.01.22 16:01:59

사스 교훈 잊었나…우한폐렴에도 뻥 뚫린 베이징 방역망
춘절 앞두고 붐비는 기차역…방역작업 전무
中당국 뒷북 방역 대책…감염자 이미 400명 넘어

수십 분에 한대씩 우한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착하는 베이징서역에 마스크를 쓴 승객들이 출구를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신정은 특파원
[베이징=이데일리 신정은 특파원] 중국 중부 우한(武漢)에서 수도 베이징(北京)으로 향하는 기차들이 주로 정차하는 베이징서역. 21일 늦은 오후 기자가 찾은 베이징서역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를 앞두고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기차역 입구로 들어서자 각 지역으로 향하는 승객들이 줄을 이었다.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질환 이른바 ‘우한폐렴’ 환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개찰구에서는 여상스럽게 신분증과 표만 검사할 뿐 별다른 검역이나 방역작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베이징서역은 우한 폐렴 발원지로 알려진 화난수산시장과 가까운 한커우역, 우한역, 우창역 등 우한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수십 분 간격으로 도착한다. 베이징과 우한을 오가는 기차는 하루 90여편에 달한다.

우한에서 온 기차가 도착하는 오후 6시 경이 되자 마스크를 쓴 승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차역 출구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설 연휴를 맞아 베이징에 놀러왔다”며 “우한역에서 열 감지기가 설치된 구간을 거쳤지만, 이후엔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한에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조심하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한으로 출장을 다녀온 30대 남성은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삭막하진 않았다”며 “우한 기차역에도 특별한 모습은 없었다”고 전했다.

베이징서역 출구에 위치한 안내표시판에 우한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착했다는 문구가 뜨고 있다. 사진=신정은 특파원
중국에서 워낙 크고 작은 전염병이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인지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베이징으로 여행 온 20대 여성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처럼 무섭지는 않다”고 말했다.

기차역에서 만난 또다른 30대 남성도 “사스도 겪었는데 이번에도 잘 이겨낼 거라고 본다”며 “너무 당황할 필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우한 폐렴이 확산하고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불안감이 커지면서 중국 당국은 뒤늦게 방역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일 우한 폐렴을 사스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해당하는 ‘을류’ 전염병으로 지정했다. 중국 국무원은 22일 국가 위생건강위원회의 당국자를 초청한 첫 기자회견을 열고 대응 수준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우한시는 확진환자가 발생하고 보름이 지난 14일에야 기차역, 공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열 감지기를 설치하고 소독을 실시했다. 오히려 홍콩과 우리나라 등 주변지역과 국가들이 이달 초부터 이미 공항 등에서 예방 조치에 나선 것과 비교하면 대응이 너무 늦었다.

중국의 이런 허술한 조치로 이미 우한 폐렴의 방역망은 뚫린 것으로 보인다. 22일 0시 기준 중국에서 우한 폐렴 환자수는 440명에 달한다. 하루 만에 13개 성에서 환자가 100명 넘게 속출했고, 사망자도 9명으로 늘었다. 중국 당국이 파악한 밀접접촉자만 2000명이 넘는다. 한국과 일본, 태국 등 이미 아시아권에서는 감염자가 발생했으며 미국에서도 첫번째 확진 환자가 나오면서 전세계가 공포에 빠졌다.

베이징서역에 춘절을 맞아 홍등이 달려있다. 사진=신정은 특파원
베이징서역이 귀향 승객들로 가득하다. 사진=신정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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