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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노장들 이끌면 뭐하나…대화·타협의 정치력 없는 국회

김미영 기자I 2018.12.04 16:56:15

“30년 정치했다”는 이해찬, ‘정치인생 막상막하’ 손학규·정동영 ‘힐난’
예산안·선거제 연계, 철벽방어 이해찬 vs 벼랑전술 손학규·정동영
‘더 큰 권력자’ 이해찬에 비난 쏠려…“선거제 침묵하는 김병준도 무책임”

3일 열렸던 국회의장 주최 초월회 오찬(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30년간 정치를 했는데 선거구제를 연계시켜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구제 개편과 내년도 예산안의 동시 처리를 요구하는 야3당 대표에 쏘아붙인 말이다. 이 대표의 방점은 뒤에 있지만, ‘30년 정치’에 눈길이 간다. 강산이 세 번은 바뀔 시간 동안 정치를 해왔다는 이 대표가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란 오래된 금언을 모를 리 없는데도 타협보단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해찬, 30년 정치? 손학규·정동영 정치인생도 이십여년인데…

3일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만난 자리에서 이 대표로부터 이렇게 ‘비난’을 당한 야3당 대표 가운데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젊은 정치인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의 대표는 이 대표와 견줘 정치이력이 부족하지 않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해 정계에 입문했으니 올해로 정치인생 26년째다. 4선 국회의원에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했고 대통령선거에 도전한 것도 3차례, 민주당 대표는 2차례 역임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치원로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발을 들였으니 정치인으로 23년을 살았다. 역시 4선 의원이고, 통일부 장관을 거쳐 민주당 대선후보도 지냈다.

이 대표와 손 대표, 정대표 모두 정치권에 오래 몸담았던 이들이기에 항간에선 이들의 당권 접수를 ‘올드보이의 화려한 귀환’으로 명명했고, 손 대표는 “올드보이 아닌 골드보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경륜 있는 정치인들의 협치’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내년 예산안이나 선거제도 개편, 유치원법을 비롯한 주요 쟁점법안 등 굵직한 현안들이 모두 여야 입장차로 국회에 발목잡힌 상황에선 “골드보이 아닌 그저 올드보이”란 비판이 나온다. 누구 하나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혹평이다.

◇“이해찬, 야당에 귀기울이지 않고 독선적…김병준, 무책임”

비판의 화살이 쏠리는 건 이 대표다.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가장 큰 권력을 지녔음에도 양보하거나 타협하려는 제스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3당이 내년 예산안과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고 국회에서 공동 농성을 벌이기까지 이 대표의 책임이 적잖다는 지적이 있다. 9월 평양에서 이 대표와 정 대표, 이정미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이 대표는 연동형비례제로의 개혁에 힘을 실었으나, 뒤늦게 “연동형 비례제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을 바꿔 분란을 초래했다는 게 야3당의 비난이다. 더군다나 이 대표는 3일 회동에서도 “연계시킬 걸 연계시켜야지 뭐하는 거냐”고 질타하는 등 야당에 대해 권위적,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야당에선 불만을 토로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양보와 타협은 힘을 가진 이가 하는 것이지, 힘 없는 자에겐 굴복을 의미한다”며 “이해찬 대표가 야당의 선거제 개편에 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야당도 이렇게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손학규, 정동영 대표가 정치9단이라 한들 군소정당 대표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국을 해결할 묘수를 내기 어렵다”며 “동시처리 요구라도 안하면 선거제 개편을 관철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한 여당 관계자는 “손학규, 정동영 대표 모두 예산안은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당 이익을 위해 전혀 무관한 사안을 묶어 발목잡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올드보이’인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비난을 피할 수 없는 형국이다. 사실상 제1야당의 대표 역할을 맡고 있으면서도 정국 최대현안이 된 선거제 개편에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어서다. 김 위원장은 “예산안은 예산안, 선거제는 선거제”라고 분리 대응 입장을 내면서도 선거제 개편 방향엔 “정부여당이 먼저 안을 내놓은 다음에 야당이 움직이는 게 맞다”고만 했다.

비대위원장 수행 기간이 끝나가는데다 당에 지분이 없는 김 위원장으로선 앞장서 입장을 낼 수 없는 처지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야당 관계자는 “거대야당 대표 역할하면서도 선거제 입장도 정하지 않고 무책임하다”며 “다른 야당들과 단일대오를 꾸려야 과반 의석이 되고 여당을 압박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이 대표와 민주당이 뻗대는 게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한편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4일 새벽 정부예산안 470조5000억원 가운데 1조5000억원을 감액했으며, 민주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 간사 간 소소위에서 심사를 계속하고 있다. 다만 공무원 증원, 남북경협기금 등 쟁점 예산들의 심사는 원내대표단으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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