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리환초 사건’은 태평양 전쟁 말기 마셜 제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밀리환초에 강제동원됐던 조선인들이 일본군 잔혹행위에 집단 저항하다 학살 당한 사건이다.
기자회견은 일본 강제동원 연구자이자 사학자인 다케우치 야스토씨가 진행했다. 그는 인육 사건과 집단저항 학살사건 등 밀리환초에서 사망한 조선인 사망자 218명의 명단을 지난해 공개한 바 있다.
이날 다케우치 야스토 씨는 최근 일본 도쿄 소재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굴한 남태평양 마셜제도 강제동원 명부의 존재를 새롭게 밝혀 공개했다.
공개된 218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일본 정부가 작성한 ‘피징용 사망자 연명부’, ‘해군 군속 신상조사표’ 등을 통해 밀리환초 강제동원 피해자 640명 명단이 새로 확인됐다. 640명의 피해자 중 5명을 제외하면 전부 전남 지역 출신 피해자들이었다.
또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가 1992년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일명 ‘광주천인소송’ 원고 중 23명(피해자 기준 25명)이 밀리환초에서 동원된 피해자로 조사됐다. 구례와 광산에서는 한 집에서 형제가 동원돼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또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견된 ‘반도공원 퀘젤린·루오트 옥쇄자(玉碎者) 명부’에는 677명의 인적이 기록돼 있는데, 이 피해자 중에도 다수가 전남, 경기, 경상에서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반도는 한반도 조선을 뜻하는데, 해당 명부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해당 번호, 동원된 날짜와 사망한 날짜, 동원 당시 탔던 배의 이름, 주소, 연락처, 동원 후 받지 못 한 미지급금의 액수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800여 명의 ‘밀리환초 섬 사망자 명부’ 세 권도 확인됐는데 일본정부가 오랫동안 후생노동성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일본 국립 공문서관으로 이관하던 중 알려졌다.
이중에도 약 200여 명이 한국인 피해자로 확인됐다. 문서에는 광양·보성 등 피해자의 출신 지역명과 사인, 날짜 등이 명시됐다. 또 96명의 ‘괌(Guam) 옥쇄자 명부’ 중 75명이 전남, 21명은 강원에서 동원된 피해자였다.
다케우치 씨는 해당 자료들이 일본서 오랫동안 은폐됐다가 최근에서야 공개됐다며 “이런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식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케우치씨는 “밀리환초 사건은 과거의 일이 아니고 현재 진행 중으로 남아있다.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정신계승, 유골 반환 등 후속적인 절차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자료의 전면 공개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밀리환초 사건은 1945년 일본군의 식인 등 잔학행위에 저항하던 조선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일본은 1942년 초 조선인 800~1000여명을 차출해 비행장 활주로 건설 등 일본군 군시설 군축 공사에 동원했다.
1944년부터 미군 해상 봉쇄로 보급로가 끊어지면서 물자 부족이 심해지고 섬 여러 곳에 분산배치된 조선인들은 배급도 없이 자급 생활을 해야 했다.
일본군도 물자 부족 상황이 심해 인육을 먹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았다. 특히 증언에 따르면 1945년 초 일본군이 조선인 2명을 살해해 얻은 인육을 고래고기라고 속여 배급한 일을 조선인들이 알게되면서, 일본군 감시병 7명을 살해하고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일부 도주한 일본군이 옆 섬에 이 사실을 알려 중무장한 토벌대가 조선인 전원을 밀리환초에서 반란죄 명목으로 학살했다.


!["고맙다"...'제자와 부적절 관계' 들통난 교사가 남편에 한 말 [그해 오늘]](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5/12/PS25121500001t.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