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대우' 뱉은 호반건설, 얻은 게 더 많다

권소현 기자I 2018.02.08 16:26:17

대우건설 인수 시도하며 기업 인지도 급상승
이슈 중심에 선 김상열 호반 회장…'무형의 자산' 획득
매 4분기마다 해외손실…대우건설 기업가치 하락 불가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호반건설 본사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했지만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더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우가 고래를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우건설에 비해 덩치가 작았던 호반건설이었지만 이번 인수 추진을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고 그만큼 브랜드 인지도 상승효과도 톡톡히 봤다는 것이다.

반면 대우건설은 해외 사업에서의 부실이 추가로 드러난데다 중견건설사인 호반건설마저 포기한 건설사라는 인식에 기업 가치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수 포기했지만 호반건설 인지도 급상승

호반건설은 8일 “내부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해외사업 우발 손실 등 최근 발생한 일련의 문제를 접하며 대우건설의 현재와 미래의 위험요소를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다”며 “아쉽지만 대우건설 인수 작업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이 작년 7월부터 대우건설 매각 작업에 착수해 6개월 만인 지난달 말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작년 4분기 모로코 사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3000억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결국 대우건설의 주인 찾기는 수포로 돌아갔다.

호반건설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상태라 이번 인수 포기에 따른 부담은 없다. 인수·합병(M&A) 추진 과정에서 수반된 자문비용 정도만 들인 셈이다.

대신 상당한 홍보효과를 얻었다.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 13위였던 호반건설이 3위인 대우건설 인수에 나서면서 호반건설의 성장 과정이나 탄탄한 자금력 등이 알려진 것만 해도 인지도 상승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란 평가다.

특히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뚝심과 경영 원칙 등이 주목받았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28세에 자본금 1억원, 5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호반건설을 업계 13위의 중견건설로 키워낸 그의 저력이 부각되면서 단숨에 이슈 중심에 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비록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했지만 현금성 자산이 넉넉한 알짜 기업이라는 점을 알린 계기가 됐다”며 “기업 이름에 대한 인지도 상승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얻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새우도 뱉은 고래…대우건설 8% 이상 급락

대우건설은 몸집이 더 작은 호반건설 품에 안기는 것에 대한 내부 불만이 많았지만,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가면서 기업가치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적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다는 점이 가장 큰 타격이다. 지난 2016년 4분기 해외사업에 대한 대규모 부실을 반영하는 ‘빅배스’(Big Bath)를 단행하면서 끝난 줄 알았던 해외 손실이 작년 4분기에도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매년 4분기마다 손실 반영이 반복되면서 실적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라진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사피 현장 준공 전까지는 해외 부문 수익성의 신뢰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숫자보다는 깨진 신뢰가 더 아픈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참 동생 격인 호반건설마저 포기한 회사라는 인식도 대우건설에는 뼈아플 수 있다. 대우건설은 1998년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된 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에 인수됐으나 2011년 산업은행에 다시 팔렸다. 이번에 네 번째 주인을 맞이 하나 싶었지만 불발된 것이다.

그 사이에 몸값도 많이 낮아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지분을 주당 2만7000원 선에 인수했지만, 산은은 주당 1만5000원에, 이번에 호반건설은 1차로 주당 7700원에 인수하기로 했었다.

호반건설의 인수 포기는 대우건설 주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날 대우건설 주가는 8.8% 하락한 518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대우건설 주가추이
이에 앞서 전일 대우건설이 모로코 손실을 반영한 작년 실적을 발표하자 증권사는 잇달아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을 하향조정했다. DB금융투자는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낮추고 목표주가도 7300원에서 6400원으로 낮췄다. KB증권은 6800원에서 6500원으로, 하나금융투자는 1만1000원에서 8000원으로, SK증권은 9500원에서 8500원으로 내리는 등 줄하향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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