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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부(재판장 김은성)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9월 고 전 이사장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고 전 이사장에게 위자료 3000만원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1000만원을 손해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남북이 대치하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 우리 현실에서 공산주의자가 갖는 의미는 치명적”이라며 “아무리 공적인 존재에게 한 말이라도 해도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모멸적인 부분까지 인정받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발언의 핵심은 문 대통령에게 ‘공산주의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림사건을 맡았기 때문에 인사적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라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사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함으로 사회적 평가를 저해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고 전 이사장도 재판 과정에서 인정했지만 문 대통령은 당시 부림사건의 변호인이 아닌 재심 사건의 변호인이었다”며 “법조인 경력이 있는 데다 부림사건 담당 검사였음에도 이를 근거로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한 것은 일부만을 발췌하거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취했을 뿐”이라 꼬집었다.
다만 “해당 발언이 연설문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졌고 문제가 됐던 것도 고씨가 방문진 이사장에 취임하면서였다”며 “무엇보다 (이런 사안은) 법관의 개입을 최소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유 등을 참작했다”며 1심보다 줄어든 손해배상액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고 전 이사장은 방문진 감사로 있던 지난 2013년 1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 참석해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부림사건의 변호인으로 활동했고 민정수석 시절 제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며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번 판결은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가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고 전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과는 대비되는 판결이다.
김 판사는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 모멸을 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아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김 판사는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라는 평가는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좌우되는 상대적 측면이 있다”며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이에 대한 생각이 같을 수 없듯이 고 전 이사장과 피해자의 입장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일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공적 존재가 국가 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정치적 이념은 더욱 철저히 검증돼야 하고 이에 대해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가 허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선 두 재판의 결과가 차이나는 것은 민사·형사 재판의 다른 성격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형사재판의 경우 명예훼손 적용에서 ‘고의성’을 중요하게 본다. 반면 민사재판인 손해배상소송은 과실에 의한 피해 등도 폭넓게 따진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는 “형사와 민사는 구성 요건과 법리 등이 다르기 때문에 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나와도 민사재판에서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경우는 빈번히 나타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