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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선후보를 두고 경선하던 세 사람은 11년이 흐른 2018년 여름 다시 만나게 됐다. 각기 다른 당에서 당권을 도전하면서다. 이해찬·정동영 후보는 각각 민주당·민주평화당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미 당 대표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본격적인 ‘전대 레이스’에 돌입했다. 손학규 상임고문도 바른미래당의 당대표 출마가 유력하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던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는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직을 꿰찼다. 이들은 대부분 2000년 초반 국회의원·장관·광역단체장·총리 등 고관대작을 두루 거친 ‘올드보이’들이다. ‘정치권 뉴스가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유력한 민주당 대표 후보인 이해찬 의원의 스펙은 막강하다.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교육부장관을 역임해 ‘친노 좌장’으로 분류되는 데다 7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 입문한 지 햇수로 30년이 넘는 거물급 인사다. 그는 지난달 26일 치러진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컷 오프’를 통과했다. 경쟁자는 김진표·송영길 후보다. 이날 리얼미터가 민주당 지지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는 35.7%의 지지를 얻었다. 2위 송 후보(17.3%)를 여유롭게 제쳤다. 3주 가까이 남은 전당대회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지만 일단 초반 레이스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것이 민주당 안팎의 시각이다.
손 고문은 지난달 30일 전남을 찾으며 사실상 당권 행보를 시작했다. 아직 명확한 의사를 밝힌 적은 없으나 바른미래당 안팎에선 “손 고문이 이미 출마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안다”는 분위기다. 손 고문은 폭염으로 인해 피해를 본 전남 순천 닭 농장과 나주 인삼밭을 찾았다. 호남 유권자를 의식한 ‘민생행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4선 의원을 역임한 손 고문 역시 경기도지사·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민주평화당에선 정동영 후보가 당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쟁자는 3선 유성엽· 초선 최경환 후보 등이다. 정 후보 역시 참여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고 2007년 대선 후보로 나선 바 있다.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도 비슷한 시기 활동한 ‘올드보이’에 속한다. 교수 출신인 김 비대위원장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와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는 총리로 지명 받았고, 지난 6·13 지방선거에는 한국당 소속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달 한국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이같은 ‘올드보이’의 귀환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각에선 ‘돌발변수가 잦은 한국 정치지형에서 당을 이끌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쇄신도 중요하지만 대중적 인지도와 능력도 간과하기 어려운 만큼 ‘간판급’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한국 정당정치가 새 인물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당권은 차기 총선 공천권과 직결되는 막강한 위치다. 이번 전당대회에 유독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두드러진 배경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 곱지않은 시선을 이유를 보내는 이유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정당들이 그동안 인재를 얼마나 키우지 않았는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며 “인력은 풍부하지만 정작 인재는 부족한 ‘풍요속의 빈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