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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중 무역 갈등의 본질은 글로벌 패권 다툼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당장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쟁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첫번째 변곡점은 미국이 예고한 중국산 제품 3000억달러에 대한 4차 관세가 실제 집행되는지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재도전 트럼프…경제 수습해야 하는 시진핑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시 주석과 아주 좋은 전화 통화를 했다”며 “우리는 다음 주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국·지역(G20) 정상회담에서 장시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각 팀은 회담에 앞서 (실무)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여 지난달 10일 이후 중단됐던 미·중 무역협상이 재개될 것을 시사했다. 중국중앙방송(CCTV)에 따르면 시 주석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한동안 중·미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는 양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양측은 공동 인식에 따라 서로 존중하고 호혜 공영을 바탕으로 조화와 협력, 안정을 기조로 하는 중·미 관계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다시 대화에 나서는 건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라’는 시장과 기업들의 아우성과 압박이 영향을 미쳤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됐다고 알리며 협상기간 동안 일시중단하고 있었던 25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부활시켰다. 아울러 중국산 제품 3000억달러에 대해서도 관세 25%를 부과한다는 4차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이전과 달리 이번 4차 관세 대상에는 휴대전화, 노트북, 장난감 등 미국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물품이 다수 차지하고 있다. 관세 인상이 곧 미국 가계 부담으로 직결된다는 얘기다.
월마트와 타킷, 코스트코 등 미국 기업 600여곳은 백악관에 서신을 보내 관세가 미국 경제를 해치고 있다며 무역 전쟁을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지난 17일부터 열린 공청회에서는 300여곳의 기업들이 자신들을 관세 대상으로 빼달라며 애걸복걸하기도 했다. 얽히고 설킨 글로벌 공급체인망을 고려하면 중국에 대한 관세는 고스란히 미국기업에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둔 애플 역시 백악관의 별도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 그룹의 중국 담당자 마이클 허슨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산업계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에서 2020년 미국 대선 재도전을 선언했다. 경제 성장을 자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이전 어떻게든 중국과의 협상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고성장 시대를 끝내고 ‘바오리우’(保六·6% 성장률 지키기)에 안간힘인 중국에도 이번 미국과의 갈등은 곤혹스럽기 마찬가지다. 특히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여전히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과 중국의 압도적인 위상 차이를 보여줬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 기업에 화웨이와의 전면적인 거래 금지를 선언하자, 글로벌 모바일 1, 2위를 다투던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량은 급속도로 줄어드는 상황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CCTV와의 인터뷰에서 “화웨이에서 타격을 입히려는 미국의 의지가 이토록 굳건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화웨이는 현재 심각하게 고장 난 비행기의 처지”라고 호소했다. 그는 올해 매출 예상치는 지난해 1040억달러보다 줄어든 1000억달러 수준으로 예측하며 화웨이 생산량을 2년간 300억달러 줄일 것을 밝혔다. 중국 기술굴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화웨이조차 휘청거리면서 중국정부로서는 어떻게든 탈출구를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4차 관세폭탄 현실화될까 ‘주목’
양국 수장이 테이블에 다시 한 번 앉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번 깨진 협상 판이 복원될지는 미지수이다. 래리 커들로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들과의 만나 무역협상의 전망에 대해 “추측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미국이 중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무역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양측이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미국은 중국정부가 산업보조금, 위안화 약세, 폐쇄적인 시장 등을 통해 자국 경제를 보호하는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합의문에 법 개정 등을 명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요구가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요구하는 산업보조금 폐지 등은 차세대 기술패권을 쥐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미·중 무역협상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변곡점은 추가적인 관세가 현실화할지 여부다.
그동안 미국은 협상장 밖으로 벗어난 중국에 돌아오지 않으면 4차 관세 폭탄을 던지겠다고 협박해왔다. 이에 대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G20회의를 일주일 앞두고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한 것에 대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된 전술이라고 진단했다. “선심쓰듯 미국의 정상회담 개최 요구를 받아들여”(클레어 리드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중국 담당 차관보)여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 그동안 대미 협상 전략을 짰다는 것이다. 20~21일 예정된 시 주석의 깜짝 방북은 ‘북한 비핵화’를 미국의 맹공을 막아낼 방패막이로 쓰려는 의도로 읽힌다.
새로운 칼과 방패로 무장한 양국 정상들이 테이블에 앉아 우호적인 대화가 오간다면 미국은 4차 관세 카드를 조금 더 아껴둘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다. 반면 이날 정상회담에서도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4차 관세 폭탄을 휘두를 가능성이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관세는 중국의 개혁 압력으로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이외에 선택사항은 없다”고 발언했다.
미국 정치전문 주간지 워싱턴 이그재미너는 미국과 중국이 닥친 당면 과제 때문에 “노동절까지 미·중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냉전을 치르고 있다. 기적은 기대하지 말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