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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금융 당국이 카드 수수료 인상에 반발하는 마트, 통신사 등 대형 가맹점에 경고장을 날렸다. 판매 가격 인상이나 카드 가맹 계약 해지 등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카드사와 가맹점 간 수수료율 책정이 민간의 사적 계약에 해당하는 만큼 당국이 실제 개입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창호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19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대형 가맹점이 자신의 협상력에 과도하게 의존해 카드 수수료 협상 논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카드사들은 앞서 지난달 말 연 매출 500억원 초과 대형 가맹점 2만3000여 개에 3월부터 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에 따라 연 매출 500억원 이하 가맹점을 중심으로 연간 수천억 원대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게 되자 대신 대형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더 걷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날 금융위 발표에 따르면 당국의 수수료 개편 영향으로 올해 연 매출 500억원 이하 가맹점의 신용카드·체크카드 수수료 부담액은 7800억원(작년 이용액 기준 추정액) 줄어들 전망이다. 이 같은 수수료 감소분을 부담하게 된 대형 가맹점은 “카드사가 수수료 인하로 인한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18조 3)은 직전 1년간 매출액이 3억원을 초과하는 개인 또는 법인 신용카드 가맹점을 대형 가맹점으로 정의하며 이런 가맹점이 “신용카드 업자에게 부당하게 낮은 가맹점 수수료율을 정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를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것으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금융위도 가맹점에 조정을 요구하거나 사법 당국에 고발 등을 할 수 있다.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과한다.
하지만 문제는 당국 개입의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다. 실제 윤 국장도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지금 상황이 처벌에 나설 수준이냐를 지금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금융 당국이 과거 법상의 처벌 규정을 근거로 대형 가맹점 고발 등에 나선 사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마트 등이 특정 카드사와 가맹 계약을 해지해 해당 카드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불편을 겪는다고 해도 대응 방안이 뾰족 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윤 국장은 “가맹점 계약은 카드사와 가맹점의 자유의사에 따라 하는 것인 만큼 당국이 일방적으로 해지하지 말라고 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카드사의 대형 가맹점 수수료 인상이 혜택을 받은 사람이 비용을 대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나 기존 가맹점 간 수수료 부담의 역진성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카드사가 포인트 적립, 할인 등 부가 서비스 혜택을 대부분 마트 등 대형 가맹점에서 카드를 사용할 때 제공하는데 그간 대형 가맹점이 이 같은 비용을 거의 부담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금융위에 따르면 카드 수수료율 책정 시 반영하는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 총 2조5000억원(2017년 기준) 중 약 80%를 매출액과 관계없이 모든 가맹점이 일률적으로 수수료를 통해 부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반 중소 가맹점과 상인 단체, 카드사 노동조합 등도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촉구해 왔다.
금융위도 작년 말 카드 수수료 개편을 추진하며 부가 서비스 혜택을 많이 누리는 가맹점이 비용을 더 부담하도록 비용 산정 방식을 개편한 바 있다. 이번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은 이 같은 제도 개선에 따른 합리적인 결과라는 것이 금융위 견해다.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현재 일부 업종은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입이 1년에 연 3500억원 수준이지만, 해당 업종에 카드사가 지출하는 마케팅 비용은 3600억원에 달한다. 일부 대형 가맹점에서는 카드로 100원을 결제하면 카드사가 1.7원 이상의 부가 서비스 혜택을 제공하고도 대형 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1.8원만 받았다. 카드사가 사실상 적자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윤 국장은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 간 논의 진행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가맹점에 부당하게 높거나 낮은 수수료가 적용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