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폭력·교통사고 CCTV가 만병통치약?

최훈길 기자I 2015.01.27 21:26:10

''크림빵 뺑소니''사고 CCTV 50대 해상도 낮아 확인 애로
전국 어린이집 설치에 최소 346억 소요..비용 더 들수도
저장기간 공공시설 30일로 제한..과거 범죄 확인 어려워
"CCTV 설치는 단기적인 행정조치..근본 해법 찾아야"

[이데일리 최훈길 고재우 기자] 두살배기 아이 엄마인 윤아영(35)씨가 종종 찾는 포털사이트 한 카페에선 요즘 정부의 CC(폐쇄회로)TV 설치 방침을 놓고 한창 설전 중이다. 윤씨는 최근 인천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CCTV 설치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막상 보낼 생각을 하니 ‘CCTV만으로 안심해도 될까’라는 생각에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정부가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을 비롯한 성추행 및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CCTV 설치’를 대책 방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낮은 해상도 등으로 인해 제구실을 못하는 ‘먹통’ CCTV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CCTV부터 설치하고 보자”는 식의 접근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크림빵 뺑소니’ CCTV 해상도 낮아 식별 어려워

CCTV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낮은 해상도다. 지난 10일 새벽 임신한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들고 집으로 향하던 가장이 뺑소니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사고 당시 목격자가 없어 경찰은 CCTV 영상 확보에 나섰지만 CCTV를 통해서는 차량 번호를 식별할 수 없었다. 경찰이 CCTV 50곳을 조사했지만 모두 화질이 41만 화소밖에 안되는 구형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수현(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시에 설치된 CCTV 1만7368대 중 9044대는 해상도가 41만 화소 미만이다. CCTV 중 6%가량은 내구연한 9년을 경과한 장비였다. 200만 화소 이상의 초고화질 CCTV가 한 대도 없는 자치구도 4곳(관악·노원·용산·마포구)이나 됐다.

영상저장 기간이 들쑥날쑥한 점도 문제다. 표준지침에 따라 공공시설 CCTV는 영상 저장 기간이 30일 이내로 제한된다. 이후에는 저장된 영상을 모두 삭제한다. 저장된 영상도 개인정보라는 이유에서다. 저장 기간이 짧다보니 범죄 사실 확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비용과 인권’ 문제에 발목이 잡혀 기간 연장이 쉽지 않다. 단, 민간은 별도의 규제 없이 자체적으로 영상 저장 기간을 정해 보관한다. 일반적으로 1개월~6개월 사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CCTV 문제는 법률 제·개정이 필요하고 논란이 많은 규제라서 정부 임의대로 강제 집행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CCTV 설치, 비용 부담에 관리 책임까지

해상도를 높이고 저장 기간을 늘리기는 데는 비용 부담이 수반된다. 보안업계에 따르면 카메라 4대와 영상저장장치를 설치할 때 평균 100만원 가량 소요된다. CCTV 해상도가 높아지고 영상 저장용 하드디스크 용량이 커지면 가격도 올라간다. 보건복지부 집계 자료를 보면 전국의 어린이집 4만3742곳 중 CCTV가 설치된 곳은 21%인 9081곳에 불과하다. CCTV 설치가 의무화되면 최소 346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유지 관리비용까지 추가하면 필요한 예산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공공시설에 설치된 CCTV는 CCTV 설치 장소에 따라 행자부(지자체), 국민안전처(도시공원 내 어린이 놀이터), 국토교통부(과속단속용 CCTV), 보건복지부(어린이집), 교육부(유치원·학교내 CCTV)로 설치·관리 부처가 제각각이다. 체계적인 CCTV 관리시스템 도입이 시급한 이유다.

CCTV 확대가 개인 사생활 및 인권 보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CCTV 반대론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면 당장 불안은 해소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며 “CCTV 설치와 같은 근시안적인 행정적 조치를 넘어 학부모들의 보육 참여 확대와 보육 교사 교육 강화를 통한 자질 향상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아동학대근절과 안심보육대책 TF(태스크포스)위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에 위치한 하나 푸르니 신길어린이집을 방문한 가운데 어린이집의 한 교실에 CCTV가 천정에 달려 있다(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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