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사는 최선옥(가명·69)씨는 이번 설 연휴에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들에게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사는 첫째 아들네 가족 3명만 모여도 4명이라, 자녀 중 한 명만 더 오게 되면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라는 정부 방역 지침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최씨는 지난해 설날은 물론 추석 때보다도 더 간소하게 차례를 준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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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전통시장에 모처럼 사람이 몰려들었지만, 시장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수칙으로 설날에도 가족·친지들이 모이지 못하게 되면서 시장을 찾은 고객들의 명절 장바구니가 가벼워진 탓이다. 게다가 최근 차례상 물가도 갑자기 올라 대목 같지 않다며 상인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방역 당국은 오는 14일까지 5인 이상 사적모임을 금지하는 방역 대책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설 연휴에도 같이 사는 직계가족이 아니라면 5인 이상 모일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일부는 스스로 귀성을 포기했다. 지난달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중 63.4%는 이번 설 연휴 고향 방문을 하지 않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설 차례상을 준비하러 시장에 나온 시민들의 장바구니도 평소 명절 때보다 가벼워졌다. 최씨는 “평소 명절이면 아들·며느리·손자·손녀 포함해서 모인 가족이 10명도 더 넘었고, 딸네 식구까지 하면 더 많이 모였다”며 “올해는 딱 4인분만 준비하려고 하니 작년까지만 해도 귤 한 상자씩 샀던 걸 올해는 한 소쿠리만 사게 된다”고 말했다.
명절 대목을 기대하던 시장 상인들은 지난 추석 때보다 훨씬 매출이 줄어들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청과물을 판매하는 박모(65)씨는 “설 연휴가 진짜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평소보다 손님이 조금씩 더 오고 있는 편”이라며 “명절 땐 사람이 많이 모이는 만큼 손님들이 한 번에 많이 사갔는데, 올해는 그런 손님을 만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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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인데 최근 물가가 부쩍 올라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설 성수품 28개 품목에 대해 전국 17개 전통시장과 27개 대형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전통시장 차례상 구매비용은 26만3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4.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서구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올해 설날은 사람들이 덜 모일 거라서 그런지 떡국용 떡도 덜 나가는 편”이라면서 “떡값은 작년이랑 똑같이 받고 있지만, 떡을 만들 때 사용하는 쌀값은 최근 20%쯤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격 인상을 하고 싶어도 손님이 아예 끊길까 봐 못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갑자기 오른 물가에 당황스러워하긴 마찬가지다. 명절 준비로 시장에 나온 최모(59)씨는 “차례상을 준비해야 해서 사야 할 건 많은데, 대파나 계란 등 가격이 다들 올라서 원래 사려던 양보다 줄일 수밖에 없었다”며 “저희 집도 자영업을 해서 코로나19 탓에 경기가 안 좋은데, 물가도 오르니 뭘 사려고 해도 주저된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9일 소매가격 기준 쌀 20kg 가격은 6만184원으로 지난해 5만1798원보다 16.2% 증가했다. 지난해 1kg 기준 2207원이던 대파는 6348원(187.6% 증가)으로, 1766원이던 양파는 3336원(88.9% 증가)으로 올랐다. 지난해 30개 기준 5219원이었던 계란(특란)은 7476원으로 43.2%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