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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다섯 살에 홀트아동복지회에 들어와 열네 살에 미국으로 입양을 간 한국인 스티브 모리슨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원이 됐다. 그는 나이 서른셋에 모국으로 돌아와 입양홍보회를 설립했다. 공개입양 문화를 만들고 인식을 개선하고 싶어서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모리슨씨는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의 영결식에 참석, “지금의 나를 키운 것은 그녀의 희생과 사랑 덕분”이라고 고백했다.
지난 17일 홀트 이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21일 경기도 일산 홀트복지타운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홀트 이사장이 60여 년간 돌봐온 장애인과 입양 아동·고아 가족 등 500여 명이 참석해 하늘나라로 향하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골수암 판정 후에도 장애인 직접 챙겨…“국에 밥 말아 먹지마라”
홀트 이사장은 생전 복지타운에서 중증 장애인들을 돌봤다. `말리 언니`로 불리던 그는 한국에서의 60년을 봉사에 쏟은 인물로 평가된다. 지난 2012년 골수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매일 아침마다 장애인 240여명을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건넸다. 한명 한명의 이름과 나이·출신지역 등을 다 기억할 정도로 홀트 이사장은 장애인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그는 늘 장애인에게 국에 밥을 말아 먹지 말라고 일렀다. 한 끼라도 대충 먹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다. 홀트 이사장은 복지타운 봉사자들에게도 “생활의 가장 기본인 식사를 정성스럽게 챙겨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복지타운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지체장애 3급 김영미(58)씨는 “이사장님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어떤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며 “늘 국과 밥은 따로 먹어야 한다고 일렀던 이사장님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홀트 이사장은 복지타운 내 고작 2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지냈다. 나머지 방 2개는 보살핌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들 데려와 함께 살았다.
◇울음소리 가득한 영결식…“말리 언니를 만나고 미운 마음 사라졌다”
이날 3시간 가량 진행된 영결식 도중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복지타운에서 15년간 함께 지냈다는 한송이(41)씨는 “처음에는 나를 아프게 태어나게 한 하나님이 싫었다”며 “그러나 말리 언니를 만나고 나서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두 살 때부터 복지타운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박순구(49)씨도 추모 편지를 통해 “말리 언니, 저희 장애인들을 위해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합창단 정기공연에 저희 보러 오신 것도 좋았습니다. 기공식날 아프신 모습으로 오셨던 것 기억합니다”라며 작별을 고했다.
홀트 이사장의 여동생 헬렌 홀트씨는 “말리는 `나는 독신이지만 많은 신혼생활을 겪었다`라고 말해왔다”며 “돌봐 온 이들이 결혼하고 나서도 말리와 함께 지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1935년 미국 사우스다코다주 화이어스틸에서 태어난 홀트 이사장은 오레곤대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스물 한 살의 꽃다운 나이에 한국 홀트아동복지회 간호사로 근무를 시작했고 이후 60년간 장애인과 고아를 돌봐왔다. 팔순을 넘길 때까지도 복지타운에서 중증 장애인들을 돌보는데 소홀감이 없었다. 이날 영결식은 홀트아동복지회장으로 진행됐다. 조의금은 홀트 이사장의 생전 뜻을 따라 아동과 장애인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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