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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키스 혀 절단' 최말자씨, 재심서 무죄…法 "정당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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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I 2025.09.10 14:39:04

재심 재판부 "중상해 증거 부족, 정당방위 인정"
검찰 "피해자 보호 못했다" 법정서 공식 사과
피해자가 '가해자' 된 사건…61년만에 바로잡혀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79)씨가 사건 발생 61년만이자 재심 청구 5년4개월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61년 전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하는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가해자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받았던 최말자(79)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0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최씨가 무죄 선고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방법원 형사합의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이날 최씨의 중상해 등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중상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최씨는 만 18세이던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씨의 혀를 1.5㎝가량 절단한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가해 남성인 노씨는 강간미수 혐의는 제외된 채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더 가벼운 형을 받았다.

당시 최씨는 집에 놀러온 친구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집 앞을 서성이던 노씨와 마주쳤다. 노씨는 느닷없이 최씨의 다리를 걸어 쓰러뜨린 뒤 입을 맞추려고 달려들었다. 최씨는 노씨의 혀가 입으로 들어오자 이에 저항해 그의 혀를 깨물었다.

중상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씨는 성폭행에 저항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남자로 하여금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도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형법학 교과서에 실렸다. 법원행정처가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기록됐다.

최씨는 2018년 미투 운동에서 용기를 얻어 2020년 5월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최씨는 “과거 검찰 조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 자백 강요, 협박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1·2심 법원은 “무죄로 볼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최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씨가 검찰 소환 시점인 1964년 7월 초부터 구속영장이 집행된 9월 1일까지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이는 검사의 직권남용에 의한 체포·감금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부산고법은 올해 2월 최씨의 재심 청구를 인용했다. 이로써 사건 발생 61년 만에 재심 절차가 시작됐다.

부산지검은 지난 7월 23일 재심 결심공판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최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구형에 나선 공판검사는 최씨를 ‘피고인’이 아닌 ‘최말자님’으로 부르면서 “검찰은 피해자를 범죄뿐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당시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그 반대방향으로 갔다”며 “성폭행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최씨는 최후진술에서 “국가는 1964년 생사를 넘어가는 악마 같은 그 날 사건을 어떤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며 “피해자 가족의 피를 토할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지난 61년간 죄인으로 살아온 삶, 희망과 꿈이 있다면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 법을 만들어 달라 두 손 모아 빌겠다”고 덧붙였다.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씨가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꽃다발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최씨는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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