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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선대 사업까지 비판하며 강경한 입장 표명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 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한 자리에서 선임자들이 남측과 함께 금강산관광사업을 진행한 것을 비판하며 독자사업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북미협상 국면에 들어서면서 김 위원장이 계속해서 강조해온 ‘자력갱생’의 의지를 남북관계에도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이 그동안 얘기해 온 ‘자력갱생’은 주로 외세, 특히 미국을 향한 것이었다. 미국을 주도로 한 서방국가들이 자신들에게 경제 제재를 하고 있지만 이것을 이겨내고 경제발전과 체제 안전보장을 이뤄내겠다는 뜻이다.
반면 남한에 대해선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강조하면서 외세의 눈치를 보지 말고 남북공동발전의 길로 나가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이번에 남북이 함께 추진한 금강산관광사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메시지를 낸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선대(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선대 정책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북한 사회의 관례를 깨면서까지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이 우려스럽다. 이에 대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위’ 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이 선대 아버지가 결정한 금강산 관광에 대해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발언을 했는데 주목해봐야 할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경협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 정책도 발목이 잡히게 됐다. 김 위원장이 ‘남측과의 합의’를 언급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철거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금강산 문제로 남북대화가 시작되면 북측은 남측 시설의 신속한 철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이 금강산에서 남한의 흔적을 지우려 하고 있으니 금강산관광은 더 이상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으로 남기 어렵게 됐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했다.
◇“정부, 현상황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의미..인적 쇄신해야”
더욱 문제는 북한이 금강산관광 사업을 독자 추진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경우 또 다른 남북경협 대표 사업인 개성공단 마저 독자 추진 또는 제3국과의 협력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의 지나친 자신감이 개성공단의 독자개발로 나간다면 남북협력사업은 설 땅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국에게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를 허용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북한이 원산 갈마지구와 금강산을 연결하는 관광사업을 추진하다가 막히니까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데리고 가서 그런 얘기를 한 걸 보면 좀 이상하다”며 “미국에 최소한 경제제재 해제 조치 일환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던 것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런 강경한 입장을 밝혔지만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고심꺼리다.
금강산관광 재개의 경우 지난해 발표된 9.19평양선언 이후 남북이 모두 의지가 있었으나 남측이 갑자기 소극적으로 태도가 변하면서 흐지부지됐다. 한 대북전문가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금강산관광 사업에 나서는 것에 대해 미국이 반대했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특히 대북 제재 위반에 연루된 우리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가능성이 열려 있어 우리 정부가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미국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한미워킹그룹에서도 미국 측은 남북경협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김 위원장의 금강산 발언에 대해 “북한이 어떤 입장이고 향후 어떤 계획이 있는지를 명확히 분석하는 게 먼저”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정 본부장은 “북미협상 결렬에 이어 남북관계도 더욱 단절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과연 현재의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고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더 늦기 전에 외교, 안보, 대북 라인을 쇄신해 한국이 ‘운전자’ 역할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