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우 기자] ‘통합과 화합’.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유훈으로 남긴 한 문장이 우리 정치가 처한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의회주의자 YS’처럼 극단적인 대립과 대결의 정치에서 벗어나 ‘정치의 복원’이 절실하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민주주의 성숙, 국민통합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의 복원’ 가장 절실
문민정부에서 청와대 부속실장을 지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극단적인 상대가 아님에도 아예 대화를 하지 않는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면서 결국 정치가 실종될 수밖에 없다”며 “같은 당내에서 (다른 계파의)정치인끼리 밥만 먹어도 뉴스가 되는 시대가 됐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뿌리 깊은 당내 갈등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도의 차이일 뿐 매한가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비박계와 친박계의 힘겨루기가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새정치연합에서는 친노계와 비노계의 갈등으로 2년 임기의 지도부가 채 1년도 되지 않아 매번 교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여야 간의 정치가 한계에 부딪혔고 행정부과 입법부의 갈등도 첨예하기만 하다. 김무성 새누리당·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합의뿐만 아니라 양당 원내대표 간 합의도 이행되지 않기 일쑤다. 지도부 간 합의사항이 계파 간 갈등으로 내부 추인과정에서 백지화되고, 청와대의 반대로 아예 없었던 일이 되기도 한다. 정치가 기능을 하지 못하자 국회가 멈춰 섰고 민생을 위한 정치는 실종이 됐다.
일생의 라이벌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협력할 때는 협력하는 ‘경쟁적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두 사람은 민주주의 쟁취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상생의 정치를 몸소 실천했다. 이제 여야도 산적한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전직 대통령의 ‘의회주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YS가)상대 당과 협상할 때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되고, 양보할 건 양보하고 양보 못할 건 양보 못한다고 선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거기에 대해서 가감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했다”며 “후배 정치인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현역 정치인들이 무엇보다 소통하고 대화하려는 자세와 함께 갈등을 조율해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가장 절실한 게 통합이라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바로 그 통합을 하는 중심이 국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완의 민주주의와 국민통합
‘87년 체제’ 이후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가 하나회를 숙청해 군부정권이 부활할 수 있는 싹을 제거하면서 이후 김대중 정부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기에는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민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 선거도 직선으로 하고 지금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뤄졌지만 과연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이 땅에 실현되고 있는 것인가”라면서 “후배 여러분들이 진정한 민주주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해달라는 호소를 한 것이 그분(YS)이 남긴 유언”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0년 ‘3당 합당’을 하면서 고착화 된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를 YS 서거를 계기로 후세들이 극복,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게 시급하다는 문제의식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상도동계(YS계)의 김덕룡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은 “지역구도 고착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두 분이 경쟁하면서 영·호남 갈등이 더 고조됐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입원했을 때 문병을 갔고 작고 시에도 가장 먼저 조문을 했다. 우리가 화해해야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행동해 오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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