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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는 안되고, MB는 되고…방어권 차원 보석 무엇이 달랐나

이승현 기자I 2019.03.06 16:22:31

法, 내달 6일 구속기한까지 선고 어려워 방어권 차원 보석 허가
MB 주장한 병 보석은 불허…이호진 '황제보석' 논란 의식한 듯
양승태, 방어권 강력 주장에도 사정변경 등 없어 기각
구속 33일 만에 보석청구도 기각결정에 영향 가능성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 재판부의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허가로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송승현 기자] 양승태(71) 전 대법원장과 달리 법원이 이명박(78) 전 대통령의 보석(保釋) 청구를 받아들였다. 병 보석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 피고인으로서 방어권 보장을 인정해준 반면 양 전 원장에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보석 기준이 무엇이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法, 구속만료 앞둔 MB에 방어권 보장…병 보석은 불허

형사소송법상 보석은 보증금을 납부하고 도주하거나 기타 일정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이것을 몰수하는 조건으로 법원이 구속된 피고인을 석방시키는 제도다. 피고인 등이 보석을 청구한 경우 몇 가지 예외 사유가 없다면 보석을 허가하도록 규정(형사소송법 95조)하고 있다. 보석 허가 제외 사유에는 △사형·무기 또는 징역 10년이 넘는 징역·금고형 △누범이나 상습범 △죄증(범죄 증거)을 인멸하거나 인멸할 염려 △도망하거나 도망의 염려 △주거 불분명 △피해자나 그 친족의 생명·신체·재산에 해를 가하거나 그렇게 할 염려 등이 있다. 이 같은 사유가 없다면 보석을 필요적으로 허가하라는 게 원칙이다.

같은 법 96조를 보면 피고인에게 이러한 제외 사유가 있어도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법관은 직권이나 청구에 의해 보석을 허가할 수 있다. 상당한 이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결정은 결국 법관 판단에 달린 셈이다. 대표적인 게 법관 재량에 속하는 임의적 보석인 병보석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담당 재판장과 주심 판사의 교체,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지난 1월 29일 항소심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특히 고령인 데다 당뇨·수면무호흡증·기관지확장증·식도염위염·탈모·피부염 질환과 돌연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이날 “구속만기인 4월 8일까지 재판을 마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보증금 10억원 납입과 서울 논현동 자택을 주거지로 한정, 외출 불허, 통신 및 접견 제한 등을 조건으로 보석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구속기한 만료까지 충실한 심리가 불가능해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보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심 재판에 대응해보라는 취지다. 또 도주의 우려 방지 측면에서 이 전 대통령이 구속기한 만료로 완전한 불구속 상태가 되기 보다는 자택으로 주거지를 한정하는 보석이 더 효율적이라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병 보석을 허용한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구치소 내 의료진이 이 전 대통령의 건강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호진(57) 전 태광그룹 회장 등의 이른바 ‘황제보석’ 논란을 의식해 병보석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됐지만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 등을 이유로 구속집행 정지에 이어 보석 결정을 받아 7년 9개월 가량 불구속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언론 보도 등으로 이 전 회장의 상습적인 음주와 흡연이 알려져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오영준)는 지난해 12월 보석취소 심문을 한 뒤 이 전 회장의 재수감 결정을 내렸다.

이 전 대통령 재판부는 “보석 제도가 엄정하게 운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불구속 재판 원칙에 부합하는 보석 제도가 국민의 눈에는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속 33일 만에 보석신청 양승태, 사정변경 불인정

보석 허가 여부는 법적 요건과 함께 재판 진행 경과, 피고인 상황·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한다. 구속 당시와 비교해 특별한 사정 변경이 있는지도 중요한 기준이다. 양 전 원장의 경우 보석을 허가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양 전 원장 측은 보석을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박남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 전 원장은 지난달 26일 보석심문 기일에서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강력히 성토하며 방어권 보장을 위한 석방 필요성을 주장했다. 양 전 원장은 “책 몇 권을 두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20만쪽의) 증거서류를 100분의 1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할 것”이라며 구치소에선 재판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반면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지난달 11일 구속기소된 이후 보석을 허가할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양 전 원장이 자신의 업무용 컴퓨터를 디가우징(자기장으로 완전 삭제)한 전력이 있다며 증거인멸 우려도 제기했다. 정식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구속된 지 불과 33일 만에 보석을 청구한 점도 재판부의 기각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보통 재판을 받다가 구속 만기가 가까워졌을 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재판 시작도 전에 보석을 청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3월 22일 구속 수감된 지 349일 만의 석방이다.

사법농단 사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보석 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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