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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검, 이 부회장 1월12일 첫 소환…구속으로 주도권 확보
특검팀이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것은 지난해 1월12일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불려온 이 부회장은 “이번 일로 국민들에게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려 송구하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표정은 여유가 있었다.
시작은 이 부회장 측에 유리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 조사를 마친지 4일 만인 1월1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같은 달 19일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당시 격앙됐던 특검팀 내부에서는 “바로 영장을 재청구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절치부심한 특검팀은 약 한달 뒤인 2월13일 이 부회장을 재소환했고 같은 달 14일 2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여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꺼낸 승부수다.
특검팀의 전략은 적중했다. 2월17일 서울중앙지법은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분위기가 특검팀으로 기우는 순간이었다.
이후 특검팀은 열흘간 보강수사를 벌인 뒤 2월28일 이 부회장을 433억원 뇌물공여, 특경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또 최지성(66)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63)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55) 전 삼성전자 전무 등은 국회 위증죄를 뺀 나머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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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의 재판은 재판부를 결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사건은 최초 무작위 전산 추첨을 통해 형사합의21부(재판장 조의연)에 배당됐으나 3월2일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영훈)에 재배당됐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앞서 이 부회장의 1차 구속영장을 심사를 맡아 기각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기피 신청을 냈다.
재배당을 받은 이 부장판사는 3월9일 1차 공판준비기일을 끝으로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하지 못했다. 이 부장판사의 장인이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씨의 후견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부장판사는 관련 의혹은 부인했으나 결국 재배당을 요청했고 법원은 사건을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로 넘겼다.
이 부회장에 대한 첫 공판은 4월7일에 열렸다. 준비기일에는 불출석했던 이 부회장도 이날은 법정에 나와 피고인석에 앉았다. 공판기일엔 공판준비기일과 달리 피고인이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직업을 묻자 “삼성전자 부회장”이라 답했다. 이날 재판에는 박영수 특별검사도 출석했다.
이 부회장 재판은 4월7일 첫 공판부터 지난 7일 결심공판까지 무려 53차례 열렸다. 매주 2~3차례씩 재판이 열린 셈이다. 법정에 나온 증인만 무려 59명에 달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은 지난 2·3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이 부회장이 구속 후 법정에서 진술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그는 “정유라를 몰랐다”, “그룹 경영에 관여 안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넬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함께 기소된 최 전 실장은 자신의 피고인 신문에서 “정유라 승마지원은 자신이 결정한 것”이라며 이 부회장을 감쌌다.
정점은 지난 7일 결심공판이었다. 최후진술에 나선 이 부회장은 “‘법과 정도를 지키고 존경받는 기업인 되어보자’는 다짐을 했지만 뜻을 펴보기도 전에 법정에 먼저 서게 되어 만감이 교차하고 착잡하다”고 울먹였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전형적인 정경유착으로 국민주권 원칙과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다”며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최 전 실장, 장 전 차장, 박 전 사장에 대해서는 징역 10년, 황 전 전무에 대해서는 징역 7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모든 절차를 끝낸 재판부는 25일 오후 2시30분 1심 선고를 하겠다고 알린 뒤 퇴정했다. 이 부회장은 박영수 특검 등 검사들에게 먼저 다가가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특검 측 역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는 표정으로 서로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법원은 25일 선고공판에서 이 부회장에 대해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1월12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이후 226일간 사투를 벌였지만 1심 결과는 결코 웃을 수 없었다.
법원은 불구속 기소된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 전 차장에게도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해 삼성을 더욱 경악케 했다. 8개월에 걸친 법정공방 1라운드가 삼성의 완패로 끝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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