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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이틀 전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던 이순규(85) 할머니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남편 오인세(83) 할아버지의 넥타이 매무새를 고쳤다.
오 할아버지는 멍하니 그런 아내를 바라봤다. ‘백년해로’를 약속했던 어린 신랑신부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6·25 전쟁통에 생이별했다.
두 사람은 65년 만에 재회해 2박3일 동안 불과 12시간을 함께한 후 어쩌면 영영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이별을 준비했다.
“아들도 잘 키우고. 맘은 크게 먹고…” 남편이 마지막으로 당부하자, 아내는 “알았슈”라고 짧게 답했다. 남편은 “(당신) 닮은 딸을 못 놓고 왔구나…”라고 읊조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와 만난 아들은 “아버지, 건강한 아들로 낳아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했다. 아들 내외는 “만수무강하세요”라며 큰절을 올렸다.
형수 이동임(93) 할머니는 오 할아버지에게 은가락지를 끼워줬다. “아버님, 형님 보고 싶으시면 이거 한번 꺼내보시라고 드리는 거예요”라는 며느리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20차 남북 이산가족상봉 1회차 행사가 종료되는 22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는 또 다시 눈물바다가 됐다. 이산상봉 첫날 기쁨과 회한의 눈물이었다면 마지막 날은 이별의 아픔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남측 이흥옥(80) 할머니는 북측 최고령자인 오빠 리흥종(88)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오빠, 어떡해… 어떡해…”를 연신 되뇌었다.
딸 정숙(68) 씨는 “아빠, 내가 또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볼께요. 어떻게 우리가 상상이나 했어요, 아버지가 이렇게 살아 계시는지…”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측 박용환(75)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누님이 항상 이렇게 업어줬는데 이젠 내가 할거야”라며 북측 누나 박룡순(82) 할머니를 업고 테이블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박 할아버지는 “65년 전의 이별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어. 그 땐 이렇게 될지도 모르고 울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또 이별해야 해”라며 울먹였다.
다른 동생 박용득(81) 할아버지는 “누님, 내가 내 차로 북으로 보내줄게. 그러니 오늘은 우리 같이 서울 가자. 2∼3일 같이 자고 가자”며 눈시울을 붉혔다.
북측 조카가 “통일되면 만날 수 있어요” 하자 박 할아버지는 “내 가족 우리집 데려오겠다는데 왜 안 되냐”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상봉장에서는 마지막 순간을 디지털카메라로 오래오래 기억하려는 가족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2박3일 간의 꿈만 같았던 혈육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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