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승현 정치부장] 과거, 선거가 끝나면 승자(여당)와 패자(야당)가 선거 과정에서 생긴 앙금을 씻어내는 일종의 관례가 있었다. 서로 제기했던 선거법 위반 고소·고발 건을 취하하는 것이다.
선거과정에선 치열하게 싸웠으나 새롭게 정부가 출범한 만큼 정쟁을 그치고 국민을 위해 협치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새 정부가 출범하고 일정 기간까지는 여야가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기간을 ‘허니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 후엔 이런 ‘허니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야 모두 과거 같이 국민을 위한 ‘통큰’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여야에서 가장 힘있게 지적했던 이슈 중 하나가 바로 김건희 여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인 김혜경씨와 관련된 논란이다. 김 여사는 주가조작과 논문표절, 김씨는 법인카드 유용이 문제가 됐다. 이런 가족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도 계속해서 이 문제를 꺼내 드는 것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얘기한대로 ‘쪼잔한’ 일이다.
아무리 야당이 대통령의 부인을 공격한다고 해도 5년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순 없다. 여당도 민생 정치 없이 과거 정권과 야당 대표 탓만 해선 20~30%대의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
민생 패싱 정쟁은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에서도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일부터 시작된 국감에서도 정책 이슈는 실종된 채 ‘윤석열차’ ‘대감(대통령실과 감사원)게이트’ ‘외교참사’ 등 정쟁 이슈만 나온다.
여야가 민생과 관련없는 ‘진흙탕’ 싸움을 하는 동안 정치권을 향한 민심은 싸늘해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조사한 결과,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올해 처음이자 1년 4개월 만에 30%를 기록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문제는 여야가 이같은 ‘쪼잔한’ 공방에 매몰돼 있는 동안 나라는 큰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고물가, 고환율, 부동산·주식시장 침체, 경상수지 적자 등 지금의 경제 위기 상황은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않아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특히 금융과 실물 경제 모두 타격을 입으면서 과거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넘는 새로운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과거 병자호란 당시 조선은 청나라에 항복해야 한다는 주화파와 항전해야 한다는 척화파는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싸움만 하다 결국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를 하는 굴욕을 당했다. 지금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여야가 힘을 합쳐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응해도 모자를 판인데, 경제와 전혀 상관없는 정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소인배 정치를 그만두고 국민과 민생을 위한 길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 전체를 상대로 국민소환 운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