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일삼은 장애인시설 또 나왔다…'탈시설' 답 될까

정두리 기자I 2021.08.19 16:41:31

인권위, 인천 장애인시설 직원 학대혐의 수사의뢰
장애인 때려 천공수술까지…21건 상해사건도 발견
장애인시설 진정사건 증가추세…탈시설 정책 대두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지난 5월 30일 한 장애인 입원환자의 천공 봉합 수술을 집도한 위장관외과 A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천공은 통상 위궤양, 이물질, 외부압력 등에 의해 발생하는데, 수술 당시 환자의 위 천공 주변 조직에는 만성 궤양으로 인한 조직 변화가 발견되지 않았고 발열 등 부수 증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위장 내 날카로운 이물질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천공 주변에 혈종이 많이 고여 있고, 문합 부위 뒤쪽 위벽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이틀 뒤 A교수는 “환자가 상담 중 배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외력에 의한 천공일 가능성이 높다”며 장애인학대 건으로 신고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장애인시설서 장애인 때려 천공수술…인권위 수사의뢰

인천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을 폭행해 천공 수술에 이르게 한 정황이 포착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천시 소재 중증장애인거주시설(피조사시설) 종사자를 장애인 폭행 및 상해 혐의로 수사의뢰했다고 19일 밝혔다.

피해자는 해당기관 거주 장애인(1974년생·남·무연고·시각·언어·지적 중복장애)으로 천공수술을 집도한 A교수의 제보에 의해서 공론화 됐다. A교수는 지난 6월 1일 인천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장애인학대 건으로 신고했고, 같은 달 3일 해당 기관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6월 4일 관련자 면담을 실시했다. 당시 피해자는 중증장애로 의사소통이 어려우나 사건 당일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파, 때렸어, 발로 밟았어”라는 취지의 진술을 일관되게 했다.

피조사시설 복도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해 보니 충격적인 장면이 나왔다. 지난 5월 30일 오전 8시께 피해자가 시설 종사자에 의해 억지로 남성휴게실에 끌려갔다 나온 후로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복통을 호소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해당 종사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남성휴게실 내에서 제압행위 등 일부 물리력 행사가 있었다는 진술까지 확보됐다. 인권위는 이와 같은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해당 종사자를 피해자 폭행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정황상 피조사시설 내 추가 피해자가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6월 21일 피조사시설에 대한 직권조사를 결정했고, 조사 과정에서 원인불상의 타박상 및 열상 등 거주인 상해사건 21건을 추가로 발견했다.

◇늘어나는 장애인시설 학대…탈시설 정책 답될까

장애인 거주시설 내 폭행 및 학대사건은 잠잠해질 만 하면 또 다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6월 전남 화순의 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장애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인권유린 정황이 포착됐다. 장애인을 사무실로 데려가 발로 걷어차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거나 뒤통수를 치는 등 폭행을 물론 일과시간 이후에는 장애인들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감금을 하기도 했다. 종사자들의 이런 행동을 시설 원장이 알면서도 묵인했고 심지어 학대에 가담했다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지난 4월 경 경산의 장애인시설 ‘성락원’에서는 “시설종사자인 생활지도원이 거주 장애인 A씨의 머리를 싱크대에 넣고, 수돗물을 틀어서 물고문을 했다”라는 폭로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현재 경산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진상 규명과 함께 시설을 폐쇄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밖에도 2015년 설립된 영덕군의 장애인거주시설 영덕사랑마을에서는 장애인 폭행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새해 논란이 커지면서 시설 폐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장애인 거주시설 내 벌어지는 폭행 및 학대 사건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인권위의 인권침해 진정사건 월별 처리현황에 따르면 다수인보호시설의 진정사건 접수건은 올해 1월 84건→2월 81건→3월 95건→4월 134건→5월 125건→6월 115건→7월 124건 등으로 오름폭을 키우고 있다. 이는 분류된 17개 기관(기타 제외)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다슬 법률사무소 모건 대표 변호사는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학대를 받더라도 가해행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진술하기 어려워 가해자의 범행을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면서 “따라서 이러한 장애인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선 다양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돼야 하고, 특히 장애인거주시설의 철저한 관리가 시급하다”고 했다.

장애인 학대가 장애인시설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탈시설 정책’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정부는 2025년부터 매년 장애인 740여명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해 2041년까지 시설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탈시설 정책을 추진중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일차적으로는 돌봄 인력이 늘어나야 할 것”이라면서 “향후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전환을 위한 정부의 탈시설 정책으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오게 되면서 이러한 학대 문제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입장도 만만찮다.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중증장애인의 부모들은 정부 정책의 철회를 결사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장애의 상태나 가족 형편 등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 탈시설을 할 경우 중증발달장애인 가족은 일상생활이 어렵다는 이들의 주장은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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