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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KB국민은행 노조가 지난 8일 대대적인 총파업에 나섰지만 1058곳의 일선 영업점은 정상 가동됐다. 간혹 불편을 호소하는 고객이 없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전체 직원(1만7000명) 셋 중 한 명(회사 추정 5500명)은 자리를 비웠는데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①비대면 금융의 힘
금융권에서는 온라인과 모바일 같은 비대면 거래가 예전보다 확연히 늘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고객을 중심으로 비대면 거래를 위주로 하다 보니 딱히 은행 창구를 찾을 일이 없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금융서비스 전달 채널별 업무처리 비중은 인터넷뱅킹이 절반에 육박한 49.4%였다. CD/ATM과 텔레뱅킹 비중은 34.3%, 7.5%를 기록했다. 비대면 채널의 비중이 91.2%에 달하는 것이다. 창구를 통한 금융업무는 8.8%에 그쳤다.
실제 국민은행의 모바일·인터넷뱅킹 비중은 86% 수준으로 ATM 거래까지 합산하면 90%가 넘는다. 10명 가운데 한 명 정도만 은행 창구를 찾는다는 뜻이다.
②은행의 기민한 대응
국민은행은 이번 파업을 앞두고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전국 1058개 전 영업점의 문을 열어두되, 411곳은 거점점포로 지정해 웬만한 업무는 모두 가능하도록 손을 썼다.
가용인력도 총동원했다. 일선 영업점에 가면 창구 직원 뒤에서 업무를 보는 후선 지원인력을 창구로 전진배치하고 인력이 부족하다 싶은 곳은 본사 인력까지 파견해 원활한 업무처리가 가능하도록 운영했다. 한 직원은 “파업이 하루에 끝나다 보니 이 대신 잇몸으로 버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은행의 대고객 홍보도 효과를 봤다. 가급적 파업 당일은 은행 업무를 피해달라는 홍보를 하고, 대출이나 외환 거래 등 필수적 업무는 거점점포로 유도했다.
고객의 불만을 누그러트리려 영업시간 중 발생하는 각종 금융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타행 송금 등 자동화기기 이용 수수료, 창구거래에서 발생하는 각종 증명서 발급이나 사고신고 수수료, 외화수표 매입 등 외환 관련 수수료다. 국민은행은 또 이번 파업으로 정상처리되지 않은 업무는 연체이자 없이 처리해 고객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할 예정이다.
③노조의 치밀한 계산
국민은행 노조는 사측과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총 5차례 파업을 예고했다. 이번 총파업은 하루짜리 경고성 파업으로, 본파업을 앞두고 투쟁동력과 조직력을 점검하는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파업을 준비하는 국민은행 노조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건 여론이다. 특히 고액연봉을 받는 은행원이 성과급 때문에 고객을 볼모로 파업한다는 비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파업으로 소비자들의 불편이 커진다면 가뜩이나 싸늘한 여론이 노조에 완전히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노조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1차 경고성 파업 날짜를 선정할 때 이를 반영했다는 해석이다. 경영진을 향한 무력시위를 하면서도 고객의 불편은 최소화할 최적일로 은행 이용고객이 가장 적은 월초이면서 주중인 8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가 예고한 대로 설 직전인 이달 말 실제 2차 파업에 돌입하면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계와 기업 자금수요가 몰리는 대목인 설 직전 파업을 강행하면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국민은행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2차 파업에 들어간다면 종전과는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이라며 “설을 앞두고 이번처럼 은행원의 30%만 빠져나가도 업무는 마비될 것”이라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