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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기준금리 인상 의지는 여전하지만, 시기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1일 기준금리를 9개월째 연 1.50%로 동결하면서 내놓은 언급은 이렇게 요약된다. ‘인상 깜빡이’를 끄지는 않았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 만큼 경제 상황을 더 점검해보겠다는 것이다. 한은이 판단을 미루면서 연내 인상 여부를 두고 금융시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통화정책 스탠스 변화 없다”
금통위 의장인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오전 한은 본관에서 금통위 본회의 직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통화정책 스탠스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그동안 “잠재성장률(2.8~2.9% 추정) 수준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물가가 목표치(2.0%)에 수렴하는 경우 기준금리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왔다. 한은의 경기 판단은 인상의 전제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는 많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성장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한은이 전망하는 올해 성장률은 2.9%. 시장의 예상처럼 오는 10월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전망치를 2.8%로 하향한다고 해도, 잠재성장률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물가 역시 차츰 오를 것이라는 게 한은의 전망이다. 이 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현재 1% 중반대에서) 4분기 1% 후반대 수준으로 오를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가 “금융안정 필요성은 좀 더 높아지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인상 의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가계부채 급증 탓에 금융 불균형이 쌓이는 만큼 통화정책을 통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가계부채 총량은 여러 잣대로 봐도 이미 높은 수준에 와 있고, 가계부채 증가율은 여전히 소득 증가율을 웃돌고 있다”며 “금융 불균형 정도가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더이상 축적은 방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시장은 한은의 4분기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10월 혹은 11월이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잠재 수준의 성장, 목표 수준의 물가, 금융안정 필요성 등으로 4분기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 4분기에는 일시적으로 전망치를 상회하는 물가 상승률이 나타날 수 있다”며 “4분기 인상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판단했다.
◇대외 불확실성이 인상의 변수
다만 이 총재는 동시에 돌다리를 더 두드려보겠다는 생각도 피력했다. 그는 “조금 더 짚어보겠다”며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아직은 신중히 짚어봐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터키발(發) 금융 불안이 주목된다. 이 총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을 비롯한 선진국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은 미국 달러화 강세와 내외 금리차 확대를 초래해 신흥국 자본 유출을 촉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통위도 통화정책방향문을 통해 “대외건전성이 취약한 일부 신흥시장국에서 환율 급등, 자본 유출 등의 불안한 움직임이 다시 나타났다”고 했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채권파트장은 “한은의 인상 의지는 유효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도 “문제는 인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 뒷받침 될 지 여부”라고 분석했다. 윤 파트장은 이를 근거로 연내 인상은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구혜영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수출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표가 부진하고 고용 둔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대외 여건도 불확실성을 높이며 경기 하방 리스크를 자극하고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집값 급등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최근 주택가격의 빠른 상승은 풍부한 유동성이 요인 중 하나인 것 사실이지만 지자체의 개발 계획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이 주택가격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는 어려운 문제”라며 “주택시장 과열에 경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고 효과도 있겠지만, 지금은 경기적 요인보다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어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주장했다.
◇시장 일각서 “연내 동결” 확산
금통위 결과를 본 시장은 차츰 반응의 강도를 키웠다. 장 막판으로 갈수록 연내 동결론이 힘을 받으며 강세(채권금리 하락) 폭이 커졌다.
이날 서울채권시장에서 통화정책에 민감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6.4bp(1bp=0.01%포인트) 하락한 1.916%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0월12일(1.900%) 이후 10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10년물 금리는 5.6bp 하락한 2.311%를 나타냈다. 지난해 9월26일(2.310%)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채권시장 한 인사는 “상방 리스크보다 하방 리스크가 많은 건 분명하다”며 “총재가 인상 깜빡이를 끄지는 않았지만, 실제 인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